[와해되는 조총련] 상. 이탈자 러시…밑둥부터 흔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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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조총련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이 휘청거린다. 조직이탈과 북한추종 노선에 대한 반발, 산하 기업.신용조합 파산이 한꺼번에 불거진데다 일본 당국은 감시의 끈을 조이고 있다. 조총련은 소속원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단체로 탈바꿈해 다시 일어서겠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그같은 현실노선이 그들의 내우외환 (內憂外患) 을 동시에 다스릴 수 있을까. 조총련의 최근 상황을 2회에 걸쳐 집중 점검한다.

지난 4월 22일 나고야 (名古屋) 지방법원은 발칵 뒤집혔다. 재일동포 원고가 민사소송 심리에서 조총련 지하 핵심조직인 '학습조' 의 실체를 폭로했기 때문이다.

원고는 조총련계 무역회사인 동명 (東明) 상사 박일호 (朴日好.55) 사장. 조선은행아이치신용조합이 예금과 대북 (對北) '애국사업' 조로 예치한 17억5천만엔 (약 1백75억원) 을 돌려주지 않자 지난해 11월 반환소송을 냈다.

이 사건의 소송심리는 조총련 수뇌부의 머리를 짓눌러왔다. 조총련계 기업 - 금융기관간의 첫송사인 데다 조총련에서 잔뼈가 굵은 원고가 재판과정에서 조직의 '1급 비밀' 을 하나둘씩 공개한 것이다. 朴씨는 예치금이 대남 (對南) 공작에 쓰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조총련 핵심 활동가였던 朴의 이반은 삐걱거리는 조총련의 한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정보관계자들에 따르면 조총련 내부 개혁파의 들썩임도 심상찮다.

지난해엔 A지방본부장이 중앙위원회에서 "왜 한국에 가지 못하게 하느냐" 고 따졌다. 올해엔 B지방본부장이 "중앙간부를 선거로 뽑자" 고 나섰다. 조총련은 북한의 하부단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조총련의 밑둥도 흔들린다.

홍성일 (洪誠一) 사이타마 (埼玉) 상공회장 등 유력 상공인들과 학부모들은 지난해 말 조선학교 (초중고) 의 북한식 사회주의 교육을 탈피하라고 촉구했다. 예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집단행동이다. 이들의 교육개혁 요구서는 익명으로 한국언론에 전달됐다.

조총련은 교복의 일부 자유화로 달랬지만 학부모들이 납득할지는 의문이다. 일본 사회에서 제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쳐달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 소식통은 "재일동포에게도 교육처럼 파장이 큰 문제는 없다" 며 "교육문제는 조총련 내부의 시한폭탄" 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조총련이 신용조합의 불량채권을 처리하기 위해 조선학교를 팔겠다는 계획에도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조선학교는 지역동포들의 자산이라는 것이다.

조직원의 이탈도 빠르게 늘고 있다. 최근 몇년새 5천~6천명 가량의 조총련계 동포가 한국으로 국적을 바꿨다. 이에 따라 재일교포 (약 65만명) 의 4분의3 가량이 한국 국적이 됐다.

북한이 지난해 8월 대포동 로켓을 발사한 후로는 조직원들이 더 불안해한다. 일본 정부가 조총련을 과격단체로 규정해 '파괴활동방지법' 을 적용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더구나 조직구성원도 '충성도' 가 떨어지는 2, 3세가 주축이다.

이들은 북한보다 일본에서의 삶을 더 중시한다. 여러 악재 (惡材) 들이 동시에 터지면서 조총련 내부는 타개책을 싸고 심각한 내홍을 겪는 것으로 전해진다.

92세의 한덕수 (韓德銖) 의장이 제역할을 못하면서 서만술 (徐萬述) 제1부의장과 허종만 (許宗萬) 책임부의장간의 알력설도 끊이지 않고 있다.

조총련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오래전부터다. 소련과 동구의 붕괴, 그리고 북한의 심각한 경제난이 불거지면서 좌표를 잃기 시작했다. 그 위기가 점차 치유되기 어려울 정도로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도쿄 = 오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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