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 2세 부부 누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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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960년 11월 25일. 아버지가 대통령에 당선된 지 17일 후 '대통령의 아들' 로 만인의 축복을 받으며 태어난 케네디 2세 - .그러나 그의 성장기는 비극의 연속이었다.

63년 남동생을 잃고 3개월 후 자신의 생일날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러야 했다.

당시 아버지의 관 앞에서 푸른 코트와 짧은 바지를 입고 어설프게 경례를 하는 그의 모습은 미국인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이후 케네디 2세는 어머니 재클린 여사의 양육아래 뉴욕 맨해튼에서 성장했다.

82년 명문 브라운대를 졸업한 뒤 연극쪽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그는 배우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아 85년 8월 '위너스' 란 공연에 출연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만류로 연극을 그만둔 그는 86년 가을 뉴욕대 로스쿨에 진학했다.

89년 8월 변호사 시험에 합격, 맨해튼의 한 검사사무실에 시보로 들어간 후 6건의 사건을 맡아 모두 승리로 이끄는 재량을 발휘했다.

그는 항상 세인들의 주목을 받아야 했다.

두번 변호사 자격시험에 낙방했을 때는 '멋쟁이 낙제하다' 란 제하의 기사가 연일 신문지면을 장식했고, 피플지는 그를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성' 으로 꼽기도 했다.

93년 7월 그는 검사직을 그만두고 95년 잡지 '조지' 를 창간하며 '출판인' 으로 재출발했다.

96년초 뉴욕 센트럴파크 공원에서 조깅하던 중 그는 '켈빈 클라인' 의 홍보책임자 캐럴린 베셋 (33) 을 만나 6개월여의 연애를 거쳐 결혼에 골인한다.

그녀는 고교시절부터 '절세의 미녀' 란 찬사를 받으며 '가장 아름다운 급우' 로 뽑혔고 보스턴 대학땐 학교캘린더 겉표지 모델이 됐다.

결혼 당시 언론들은 '재클린 오나시스의 부활' '미국 최고의 총각을 잃은 게 아니라 가장 매력적인 부인을 얻은 것' 이라고 대서특필했다.

"이제 언제라도 떠나고 싶을 때 우리 두 사람은 비행기에 몸을 싣고 저 멀리 떠날 것이다. " 케네디 2세가 지난해 경비행기 운항 자격증을 땄을 때 USA 투데이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 말이 현실이 된 것일까.

김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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