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을 꿈꿨다 … 이젠 성장 중시하는 자유민주주의자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40면

김문수 지사는 인터뷰 말미에 명함을 꺼냈다. 그러곤 “외국에 나가면 ‘정지도(경기도)’가 뭐냐고 해 당황할 때가 많다”며 “삼성, LG 같은 회사 때문에 수원이나 화성을 더 잘 알더라”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김문수(58) 경기도지사는 요즘 두 개의 거대한 벽과 싸우고 있다. 벽 한 개는 인구 1138만 명의 전국 최대 광역 지방자치단체장이면서도 중앙 정치 무대에선 주목 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사석에서 그는 “서울시장은 광장에 분수대만 설치해도 뉴스로 다뤄지는데, 경기지사는 산을 통째로 깎아도 뉴스가 안 된다”며 서울 중심적 사고를 한탄하곤 한다. 25년 노동운동 경력과 15년 보수정당 이력을 함께 지닌 그는 또 “사회주의는 실패했다”며 ‘보수 진영’의 대안이 되길 꿈꾸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지난 16일 보수 논객으로 불리는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와의 대담 내용을 엮은 『나는 일류국가에 목마르다』란 책까지 나왔다. 28일 중앙일보 편집국 중회의실에서 김 지사의 갈증과 속마음을 들어봤다.

만난 사람 = 박승희 정치부문 차장

- 책의 내용을 보면 김 지사가 마치 보수주의자로 커밍아웃을 선언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에 대한 강한 비판 등이 그렇다.

“보수주의자라고 하기에는 그렇고 성장을 중시하는 자유민주주의자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적어도 우리나라가 세계 10대 일류국가 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 박정희 전 대통령을 ‘상당히 정이 있는 독재자였다’고 평가했다.

“나는 박 전 대통령만 없으면 우리나라가 민주화된다고 생각해서 그분이 서거했을 때 만세를 부르며 기뻐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역대 대통령 중 박 전 대통령을 가장 높게 평가한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당시 운동권이 가장 반대하던 사업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가장 잘한 일로 평가받고 있다. 현충사나 행주산성 같은 민족의 기본정신이 깃든 곳에 가보면 박 전 대통령의 행적이 많이 남아 있다. 굉장한 일을 한 것 같다.”

- 며칠 전 여론조사를 보니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에서 2.0%에 그쳤다. 보수 진영에 몸담고 있어 진보 쪽의 외면을 받고, 반면 보수 쪽에선 김 지사가 아직 같은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김문수라는 사람이 인지될 정도로 비중 있게 평가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아직까지 국민이 선택할 만한 매력이 아주 박약한 것 같다.”

- 두 차례의 투옥 경력을 지닌 노동운동가가 1994년 민자당에 입당한 걸 아직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혁명을 꿈꾸던 사람이다. 다만 북한 같은 사회주의는 아니었고, 자유민주주의적인 대한민국의 발전을 완전히 부정한 건 아니었다. 대학 입학 후 이념적으로 경도되기도 했는데 주사파나 러시아 사회주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도 동경하는 것이 혼재돼 있었다. 하지만 사회주의권이 붕괴되는 것을 보면서 저렇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민중당 활동을 했는데 실패했다. 그 실패가 민자당에 들어가는 계기가 됐다.”

- 스스로의 이념을 어떻게 자리매김하나.

“좌는 아니고 우인데 평균적으로 보면 중도 우로 봐야 하지 않나 싶다. 예를 들면 이승만 전 대통령이 아주 훌륭한 대통령이라고 하면 극우라고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역사에 대해 높이 평가한다고 해서 극우는 아니다.”

- 경기지사가 서울시장에 비해 푸대접받고 있다고 생각하나.

“일기예보만 봐도 서울광장이 화면에 나오지 경기도가 나오지 않는다. 청계천은 의미 있는 복원이었고 주변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광화문광장은 길 한가운데에 있어 상당히 위험하고 삭막하다. 그런 게 어떻게 예찬을 받는지 이해 못하겠다. 뉴욕시장 마이클 블룸버그는 유명하지만 뉴욕주지사 데이비드 페터슨은 유명하지 않다. 서울시장과 비교하면 나도 그런 것 같다.”

- 지난해 수도권 규제 문제를 놓고 이명박 대통령을 많이 비판했다. 그러다가 대통령의 미움을 사겠다.

“(웃으며) 지난번 시도지사 만찬 때 나를 바로 옆에 앉으라고 하더라. 아무래도 나를 껄끄러워할 거다. 행정구역 개편 문제에 대해 예전에는 시·도지사를 경유하지 않고 정부에서 바로 시·군과 대화했는데 내가 문제 제기를 많이 하니까 시·도지사를 경유하게 됐다. 세제를 비롯해 택지개발권 등 여러 권한을 대통령이 다 가지고 있다. 이게 문제다. 그리고 8개 특별지방행정을 지방에 이양한다고 해놓고는 아직도 그렇게 안 하고 있다.”

- 지난해 촛불집회로 대통령이 곤욕을 치를 때 ‘실용주의는 정치에서 무소속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대통령이 중도실용을 말하며 국정운영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는데.

“지금 대통령 지지도가 많이 오른 건 경제가 좋아졌기 때문이다. 법치를 확립하지 않은 상태에서 중도실용 정책을 펴면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당시 촛불시위에 대해서는 초기에 응징하고 진압했어야 했다. 좀 더 확실히 법치주의에 대한 신념과 집행을 보여줘야 한다. 대통령이 실용만 중시하고 국가의 큰 비전을 제시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

- 뉴욕 특파원들을 만나 ‘세종시는 가장 잘못된 말뚝’이라고 말했다. 세종시 건설에 이미 5조4000억원이 투입됐는데 이제 와서 그만둘 수 있다고 보나.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가장 빠르다. 더 늦으면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본전 생각해서 계속 그러면 나중에 더 망한다. 대통령이 역할을 해야 하는데 촛불집회 이후 너무 조심하는 것 같다. 행정부처는 모두 한군데 모여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경기도가 재판이 진행 중인 황우석씨와 8월 26일 복제돼지 연구 지원 협약을 체결했는데.

“황 박사는 연구실적이 있다. 물론 잘못된 부분도 있지만 앞으로 일정 정도 지원을 할 생각이다. 4000만원인데 축제 하나 여는 것보다 적은 돈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유죄를 받았다고 모든 게 나쁜 건가. 황 박사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 유죄가 된다고 해서 모두 나쁜 것은 아니다.”

- 투자를 유치하러 외국을 많이 다닌다. 과거 대기업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갖지 않았나.

“나뿐만 아니라 대통령, 국회의원도 일자리를 만든다고 하는데 일자리를 만드는 건 기업이다. 외국인들은 경기도를 잘 모른다. 나는 외국에 나가면 존재감이 없지만 삼성, LG는 다 안다. 재벌을 도와준다고 매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오해고 객관적이지 않다.”

-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나.

“공천제도다. 당론 정치가 먹혀 드는 건 당론을 안 따르면 다음에 공천을 안 주니까 그러는 거다.”

- 책에 보니 대선에 출마하느냐는 질문에 ‘지지도가 너무 낮다’고 대답했더라.

“지지도가 높으면 당연히 생각해 볼 거다.”

-내년 지방선거에 다시 출마하나.

“도지사 재선은 가능할지, 또 바람직한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정리=허진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