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기 왕위전] 서봉수-조훈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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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빈삼각 아픔 견디며 중앙白 서서히 압박

제6보 (78~99) =프로들은 왜 빈삼각을 보면 고개를 저을까. 빈삼각이란 행마는 지극히 비능률적이기 때문이다. 행마는 곧 능률이며 능률의 원천은 스피드다.

그러나 전보의 마지막 수인 흑를 보면 그 꼬불꼬불 기어나오는 모습이 스피드하고는 거리가 멀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다. 더구나 78로 뚫리는 아픔이라니! 빈삼각도 싫고 뚫리는 것도 싫다. 프로의 본능이다.

그런데 모양에 대한 감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빠르기에서도 전류와 같다는 曺9단이 이걸 강행하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흑은 먼저 중상을 입고 있다. 반드시 치명상을 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이는 이런 수를 둘 수는 없다. " (임선근9단) 曺9단이 지금 동원하는 일련의 수순은 독수 (毒手) 라고 봐야한다.

프로는 나중에 금덩이를 얻을지라도 한집을 먼저 손해 봐야 한다면 그걸 망설이는 사람들이다. 曺9단은 그러나 자신의 모양이 구겨지고 피부가 찢겨나가는 아픔을 먼저 겪으면서도 반드시 필살의 일검을 날리려한다.

"바둑도 유리한데 참으로 처절하다" 고 검토실은 고개를 젓는다. 그렇지않아도 강렬한 기풍의 曺9단이 적개심 서린 옛 라이벌을 만나자 아예 뼈를 추리자고 달려든다.

그의 목표는 중앙의 백들. 우측엔 흑의 막강한 배경이 버티고 있으니 일단 차단하면 도망갈 길은 멀다. 그걸 끝까지 추격해 쓰러뜨리겠다는 원모 (遠謀) 요, 무서운 복안이다.

87부터 사전공작을 거친 다음 93에 붙여 드디어 曺9단은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徐9단이 96으로 슬쩍 지원부대를 띄웠을 때 97이 표범의 발톱처럼 날카로운 수. 백의 중앙진출을 은연중 저지하며 은근히 백 전체의 사활을 노리고 있다.

98로 지키자 백의 후수. 이 후수가 흑의 야망에 날개를 달아줬다. 13분의 장고 끝에 99.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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