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대, 시간강사에 추석 보너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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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시간강사 이모(46·대구시 만촌동)씨는 최근 통장을 확인하다가 깜짝 놀랐다. 100만원 가까운 ‘청정절융 격려금’이란 낯선 돈이 입금돼 있어서였다. 이씨는 송금 착오로 생각했다.

이씨는 e-메일을 확인하다가 또한번 이상한 걸 발견했다. ‘시간강사 샘님덜깨 맛껴더린 책무애 비해 학꾜애 처우넌 너무 빈약하다넝거 널 죄송하게….’ 내용이 사투리 투성이인 데다 표기법도 엉망이었다. 스팸메일일까? 하지만 보낸 사람은 계명대 신일희(70) 총장이었다. 죄송한 마음을 담아 격려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의심은 기쁨으로 변했다. 시간강사를 하는 이씨가 난생 처음 대학에서 보너스 100만원을 받은 것이다.

계명대가 시간강사에게 보너스를 지급한 것은 개교 이래 처음이다.

계명대는 올 초 경제 위기를 맞아 교수회의에서 ‘예산 30% 절약운동’을 선언했다. 그때부터 전 직원이 전기·수도·소모품 사용을 줄이고 회의비 등을 절감했다. 그 결과 지난 8월 말로 학교 측은 지난해 대비 88억원을 절감할 수 있었다.

총장은 서신에서 학생들도 근검절약을 조금씩 배우는 것 같다며 고마워했다. 거기다 최근 끝난 1차 수시모집에서 계명대는 대구·경북 지역에서 경쟁률이 가장 높았다며 직원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총장은 추석을 앞두고 직원들에 격려금 지급을 결심했다. 대상과 금액이 문제였다. 처음엔 대학의 약자인 시간강사들에게만 고마움을 전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논의 끝에 고생한 전 직원에게 호봉과 직급에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100만원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시간강사만 모두 830여 명. 이들의 격려금만 8억원이 넘는다. 격려금은 시간강사 이외에 일용직과 비정규직·교수·교직원 모두에 총 25억원이 전달됐다. 학생들을 위한 장학기금 마련도 잊지 않았다.

계명대 강영욱 기획정보처장은 “시간강사를 한 식구로 생각한다는 뜻을 담은 것”이라며 “교수들 대부분이 ‘정말 잘했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이 대학이 지난해 내세운 모토인 ‘청(청결)정(정직)절(절약)융(융합)’이란 정신도 살려낸 셈이다.

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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