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쇼트트랙 ‘2인자’에서 ‘1인자’로 이호석 - 성시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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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에이스로 떠오른 이호석(왼쪽)과 성시백이 28일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에서 내년 토론토 올림픽 금메달을 다짐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진경 기자]

그들은 ‘쇼트트랙의 황제’ 안현수를 보며 꿈을 키웠다. 안현수가 없는 지금, 그들은 이번 겨울 주인공을 꿈꾸고 있다.

27일 서울 목동실내빙상장. 종료 반 바퀴를 남겨두고 캐나다 선수에게 뒤져 있던 이호석(23·고양시청)이 폭발적인 스피드로 선두를 탈환하자 관중석은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남자 계주 5000m에서 극적인 한국의 우승.

24일부터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월드컵 2차 대회에서 한국은 총 8개의 금메달 중 5개를 따냈다.

일주일 전 열린 1차 대회에서 얻은 금메달도 5개. 이 10개의 메달 중 남자팀이 따낸 메달이 7개다.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을 불과 4개월 앞두고 한국 남자 쇼트트랙 팀은 빙판을 씽씽 지치며 쾌속질주하고 있다.

‘피겨 퀸’ 김연아(19·고려대)가 피겨스케이팅에서, 이규혁과 이강석이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사상 첫 금메달 획득을 노리고 있지만 겨울올림픽의 ‘금밭’은 역시 쇼트트랙이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은 밴쿠버 올림픽 쇼트트랙에서 금메달 3개를 목표로 잡았다. 목표가 점차 현실로 바뀌고 있다.

올해 초만 해도 쇼트트랙 관계자들은 남자팀이 이렇게 좋은 성적을 내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4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이호석과 성시백(22·용인시청)·이정수(20·단국대)·김성일(19·단국대)·곽윤기(20·연세대)가 태극 마크를 달았다. 이호석을 제외하면 올림픽 경험이 전무했다. ‘황제’ 안현수(성남시청)가 부상으로 인한 부진 때문에 탈락하면서 자연스레 세대교체가 이뤄지자 대다수 관계자는 “중량감이 떨어진다”고들 했다.

하지만 올해 열린 두 번의 대회에서 안현수의 빈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대표팀의 맏형 성시백과 이호석 덕이다.

1차 대회에서는 성시백이 선전했다. 1500m에서 금메달, 500m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2차 대회 주인공은 이호석이었다. 그는 1500m와 1000m, 5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따내 3관왕에 올랐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서 둘은 크고 작은 좌절감을 경험했다. 성시백은 “토리노 때는 국가대표로 선발되지 못했다. 선배·친구들이 메달 따는 모습을 TV로 보면서 그 자리에 있지 못한다는 게 너무나 뼈아팠다. 밴쿠버 올림픽 때는 꼭 국가대표가 되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고 말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이호석에게도 아쉬움은 있었다. 그는 “1500m 은메달을 땄을 때는 군 면제 혜택을 받았기 때문에 마냥 좋았다. 1000m의 경우 금메달을 노렸는데 은메달이었다. 금메달을 딴 안현수 형이 워낙 뛰어나 실력으로 잡을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아픔을 딛고 일어선 이들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성시백은 2007년 토리노 유니버시아드에서 5관왕에 올랐고, 이호석은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남자부 우승을 하면서 두각을 드러냈다.

미국 쇼트트랙 대표팀 전재수 감독은 “두 선수 모두 올림픽 전관왕을 바라볼 만한 실력을 갖췄다. 특히 성시백은 스타트 속도가 매우 빨라 취약 종목인 500m 금메달도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올림픽을 앞둔 이들은 여러 가지 기대로 들떠 있다. 성시백이 “김연아와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 기대된다”며 20대 청년다운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자 이호석도 “나 역시 김연아랑 친해지고 싶다”며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한국팀의 금메달 싹쓸이”라고 말했다.

밴쿠버 올림픽 경쟁국은 어디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이들은 “한국!”이라고 입을 모아 외친 뒤 “우리끼리가 가장 무섭다. 서로가 경쟁 상대긴 하지만 상대가 메달을 따면 꼭 축하해줄 것”이라고 의젓하게 답했다.

온누리 기자, 사진=김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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