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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가짜 미술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5년반에 걸친 피나는 노력 끝에 로마 시스티나의 성당벽화 '최후의 심판' 이 완성됐을 때 미켈란젤로는 66세의 고령이었고,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그러나 작품을 더 만들어내라는 교황과 후원자들의 압력은 그칠 줄을 몰랐다.

당시의 괴로움을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불만 속에서 작품을 만들 수밖에 없다. 불만 속에서 만들어진 작품은 진정한 예술이랄 수 없다. "

1564년 그가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 상당수의 작품을, 특히 드로잉 작품 거의 모두를 불태우는 등의 방법으로 없애버렸다는 이야기는 거기에 근거한다.

오늘날에도 그런 예술가들을 많이 볼 수 있으니 사실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문제는 그의 드로잉이 6백30점이나 된다는 점이다.

과연 그것이 모두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냐에 대해서 의아심을 품는 사람이 많은 것은 그 까닭이다.

독일의 한 미술사학자는 무려 30년동안 이 문제만 파고든 끝에 지난 91년 '자신있게' 논문을 내놓았다.

결론인즉 6백30점 가운데 진짜 미켈란젤로의 작품은 겨우 65점에 불과하다는것, 나머지는 모두 그의 제자들이 그렸다는 것이다.

가장 구체적인 근거로 제시한 것이 영국 윈저성 로열 라이브러리 컬렉션에 소장돼 있는 '젊은이의 머리' 란 유명한 작품이다.

그는 전기 (傳記) 와 몇가지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면서 그 모델이 미켈란젤로의 미남 제자인 토마조 데 카발리에리이며, 그것은 그 제자의 자화상이라고 단정했다.

물론 그 미술사학자의 주장에 대해서는 전세계적으로 찬반이 엇갈렸다.

사실이 아니라면 별문제지만 사실이라면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재능에 필적할만한 천재적인 제자를 여럿 두었다거나,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라고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몇몇 태작 (타作)에 대한 혐의를 벗게 된다는 따위의 문제들이 남는다.

하지만 진위 여부에 대한 논쟁은 더 이상 확산되지 않았다.

4백여년 전의 일인데다가 더욱 확실한 과학적 근거를 들이대기는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생존화가가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하는데도 전문가들은 '맞는다' 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 어처구니 없는 일은 왜 생기는가.

자신이 그렸다는 고서화 위조범의 자백에도 불구하고 그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측은 '진품판정을 뒤집을 이유가 없다' 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다.

과학으로 풀어야 할 문제인지, 과학으로 풀릴 수는 있는 문제인지 두루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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