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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461. 아라리난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7면

제10장 대박

"결산할 일이 남아 있다는 얘기도 못들었는데요. "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거나 나중으로 미뤄두고 얘기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요. " "내가 알아선 안되는 일인 모양이죠. " "동업자들이 넷이나 됩니다. 그 네 사람들끼리 만나는 게 순서겠지요. "

그녀의 입에서 짧은 한숨 소리가 흘러 나왔다. 실례하겠다고 양해를 구한 그녀는 대문 밖으로 나섰다. 문 밖에 다른 일행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십여 분이 흐른 뒤에 다시 나타난 그녀는 서문식당에서 아침식사를 준비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두렵고 애매했었던 거동과는 판이한 행동이었다. 오해가 풀린 것만 다행으로 알고 서문식당을 찾았다.

두 여자가 주방에서 늦은 아침식사를 마련하느라고 분주했다. 강원도 양양에서 벌어졌었던 중국산 뱀 밀수사건의 전말을 듣게 된 것은 두 여자와 같이 했었던 아침 식탁에서였다. 듣고 보니 범죄행위로 구성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었다.

박봉환과 동행했었던 박봉환의 아내가 내막을 소상하게 엮어내는 동안 곁에 앉은 언니는 몇 번인가 그녀에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눈을 흘기거나, 말을 가로채기도 했다. 언니의 불만은 사건의 중심 골격을 벗어나 두 사람 사이에 벌어졌던 잠자리 이야기까지 시시콜콜하게 까발리려 드는 희숙의 이야기 전개방식에 있었다.

이를테면 어느 모텔에서 어떻게 밤을 보냈으며 도피 중에 박봉환이가 보여주었던 사랑에 대한 확인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희숙은 사건의 진솔한 내막과 함께 그런 따위의 자잘구레한 사랑의 사례들에 심정적으로 매달려 있는 듯했다.

그녀의 이야기가 과거지향의 퇴행성을 보이고 있는 것은 박봉환의 귀국 날짜가 지연되고 있을수록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때의 고초와 충격으로 병원에 입원까지 하는 소동을 겪었다는 고백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었다.

그리고 그녀는 하지 않아도 될 한마디를 덧붙였다. "모두가 일확천금을 노린 형부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지 뭐예요. " 그러나 그 한마디로 언니의 만류를 무릅쓰고 한철규를 만나는 일에 모험적인 적극성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조급함을 읽을 수 있었다. 형부를 정면으로 비난하고 드는 그녀의 말에도 언니는 머쓱한 표정이었으나 앙칼진 맞대응은 없었다.한철규는 털어놓고 보니 가슴이 후련하다는 듯 그녀의 손을 잡아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

"범죄행위였던 것만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내막을 소상하게 들어 보면 형부와 봉환씨가 지레 겁먹고 도피행각을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해 볼 수도 있겠네요. 배완호의 말처럼 정말 수배령이 내려졌는지, 그래서 당국에서 정말 행적수사를 하고 있는 것인지 확인해 볼 필요는 있겠네요. 그 정도의 일이라면 내가 알아봐 줄 수 있겠습니다. "

"경찰에 연줄이 있다는 얘기네요?" "평소에 경찰서라는 말만 들으면, 지은 죄가 없어도 백미터 안쪽으로는 접근한 적이 없는데, 연줄이 있을 턱이 없어요. 하지만 연줄이 없다 해서 알아보지 못하겠습니까. 그런데 한가지 의문도 있습니다. 세 사람이 중국에서 진작 귀국하지 않고 있는 것은 그 사건 때문에 도피행각을 벌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장삿속 때문인지 알 수 없지 않습니까?"

"그것도 그러네요. 다롄에서 전화가 걸려온 것은 바로 닷새 전이었어요. 진작 귀국하지 않는 까닭이 그 사건 때문이냐고 따지고 들었더니, 코대답도 않고 날 보고 받아적으라고 호통만 치던데요. " "받아 적다니?" 한철규에 대한 의구심이 완전히 사라진 안주인이 방으로 쪼르르 달려가서 닷새 전에 전화 통화로 받아 적었다는 메모 쪽지를 꺼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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