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두뇌한국 21' 재검토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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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권영빈 (權寧彬) 논설위원의 2일자 칼럼 'BK21이 성공하려면' 을 읽고 'BK21, 반민주적 대학정책 전면개혁을 위한 전국교수대회' 의 관계자로서 정확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펜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칼럼에서는 정부가 매년 2천억원을 대학발전에 지원하겠다는데 어째서 수혜 당사자들이 반대하고 나서는가 묻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2천억원의 재원 중 1천억원 가량은 대학교육을 위해 새로 증액한 예산이지만 나머지 1천억원은 과거 사학 등에 지원되던 예산을 삭감해 만든 것이다.

예를 들어 사학진흥기금은 지난해 8백50억원에서 5백억원으로 3백50억원이 삭감됐다.

특히 사학에 대한 국가지원의 비중이 4%에 불과해 90%대의 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 18%, 일본 9%에 비해서도 훨씬 낮은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하면 BK21은 고급두뇌 몇명을 키우려고 사학의 기초기반을 무너뜨릴 우려가 있다.

둘째, 칼럼은 BK21 예산의 대부분이 대학원생 지원에 사용되는데 자신들도 대학원, 시간강사를 거쳐 현재에 이른 교수들이 어떻게 이 사업을 반대할 수 있느냐고 묻고 있다.

이 또한 오해다.

우리는 대학원생 지원에 절대 반대하지 않는다.

문제는 지원방식이다.

BK21은 대학원생들에 대한 지원이 연구과제를 맡은 교수의 연구원으로서 주어지도록 돼 있다.

게다가 인문사회과학의 경우 지원분야가 한심하게도 정부가 무슨 기준으로 정했는지 모르지만 동아시아 등 5개 분야로 미리 정해져 있다.

따라서 그 분야를 전공하고 연구프로젝트를 맡은 교수 밑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돼 있다.

이는 가뜩이나 봉건적 관계가 지배하는 우리 대학사회에서 대학원생들을 교수의 노예로 만들 뿐 아니라 이들의 창의성을 말살하는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또 이 정책은 5개 분야에 우수학생들의 집중을 초래함으로써 나머지 학문분야를 황폐화시킬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대학원생들에 대한 지원이 교수의 연구원으로서가 아니라 독자적인 연구계획 및 능력에 대한 공개경쟁에 의해 이들에게 직접적으로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점들 이외에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정책결정.시행과정.내용면에서 나타나는 반민주성.반개혁성이다.

김대중 정부가 주장해온 참여민주주의가 무색하게도 BK21은 교수들이 배제된 밀실입안이었고 공청회 한번 열지 않았다.

그 결과 정권만 바뀌면 교육정책이 바뀌는 국민의 실험 모르모트화가 지속되고 있다.

시행과정도 마찬가지다.

21세기 한국의 고등교육을 좌우할 중대사안을 한달만에, 그것도 방학 중에 준비해 결정하고 각 대학은 비상연락망을 동원, 응모준비를 하라는 공문까지 내려보내는 코미디를 연출했다.

한마디로 5분대기조 동원식, 성수대교식의 졸속주의다.

내용 역시 權위원이 지적한 여러 문제 외에도 지나치게 불균형 발전전략에 치우쳐 있고 집중지원대상 선정기준이 불공정하다.

특히 최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신자유주의정책에 의해 우리 사회가 양극화된 데 이어 교육마저 양극화하게 된다는 점이 문제다.

따라서 BK21을 강행할 것이 아니라 이같은 교육철학 문제 등을 놓고 공개적 논의를 거쳐 21세기 한국고등교육의 모형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입장이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교육은 영원하다.

손호철 서강대교수. 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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