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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풀리니 구조조정 뒷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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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계열사 매각 부진=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시중은행장 간담회를 하고 “경쟁력 없는 한계기업을 과감히 정리해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원론적인 차원에서 구조조정의 의지를 밝힌 것이다. 감독당국은 또 “구조조정을 제대로 추진하지 않는 기업에 대해서는 은행들이 여신 회수를 하고 신규대출도 중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기업의 계열사 매각이 지지부진해진 데 대해서다.

대우건설과 금호생명 매각을 추진 중인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마땅한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아 고심 중이다. 대우건설의 매각 주간사는 29일까지 대우건설 지분 매각을 위한 인수의향서(LOI)를 받기로 했다. 주로 6~7개 정도의 외국계 기업과 펀드들이 대우건설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정도다. 금호생명의 매각 협상도 1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 동부그룹의 계열사인 동부메탈 매각 협상도 어렵다. 산업은행이 이를 인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매각 가격을 놓고 동부 측과 이견이 크다.

◆워크아웃 무산 속출=올해 초 채권단의 신용위험평가에서 B등급(일시적 유동성 부족)을 받았던 중견 건설업체 현진은 최근 부도를 내고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한때 금융권이 워크아웃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예상보다 신규 자금이 많이 들어가는 것으로 나오자 금융회사들이 발을 빼버렸다. 녹봉조선·진세조선 등 조선사들은 은행과 보험사가 지원 방식을 놓고 대립해 워크아웃이 중단됐다.

정부가 해운업 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한 선박펀드를 통한 선박 매입 작업도 은행들의 반대에 부딪혀 진통을 겪고 있다. 자산관리공사(캠코)는 1차 매입 대상으로 선정한 62척의 선박 중에서 지금까지 17척을 사들였으며 추가로 10척 미만의 선박에 대해서만 매입을 추진 중이다. 익명을 요구한 캠코 관계자는 “해운사에 선박을 담보로 대출해 줬던 은행들이 선박 매입 자금의 일부를 대야 하지만 대출 이자를 못 받는 선박 매입에 찬성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구조조정은 여전히 필요”=전문가들은 효율적인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계속 강조한다. 금융연구원 장민 거시경제연구실장은 “경쟁력이 떨어진 부실기업들은 돈을 대준다고 살아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며 “우리 경제가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성장을 하기 위해선 구조조정을 통해 장래의 불안 요소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총론적 주장엔 모두 공감하지만 각론에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계기업을 퇴출시키거나, 구조조정 기업에 신규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은행엔 적잖은 부담이다. 잠재부실이 현실화되는 데다, 대손충당금 부담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겨우 개선된 경영실적에 부담을 주는 일은 가급적 피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감독당국에 이끌려 미리 숫자를 정해 놓고 하는 인위적인 구조조정엔 기업과 은행 모두 거부감을 보인다. 경기 움직임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특정 시점을 끊어 기업에 대한 생존과 퇴출 판정을 내린다는 게 불합리하다는 주장이다. 현대경제연구원 유병규 경제연구본부장은 “장기 전략산업에는 지원을 하고 공급 과잉상태인 부분은 과감하게 손을 대야 한다”며 “정부가 경기 회복기에 걸맞은 구조조정 전략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김원배·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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