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요제 PD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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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대학가요제' 담당 박현호 PD가 대상 수상곡인 '군계무학'을 둘러싼 표절 논란에 대해 "어이가 없다"며 표절 가능성을 일축했다.

박 PD는 27일 대학가요제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그네들의 곡이 표절이 아니냐며 물어오는 데는 진짜 어이가 없었다"며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검색하니 가관이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재범이 사건 잠잠해지고 나서 잠시 찌그러져 있더니 이네들이 다시 흥미로운 먹잇감을 찾았나 보다"라고 말했다.

그는 13팀의 엔트리들을 뽑기 위해서는 3차의 예심을 거치며 그 과정에는 가수, 작곡가들을 비롯해서 TV, 라디오, 편성 등 제작관련 각 부문의 피디들이 폭넓게 참여했다. 그리고 두 번의 쇼케이스를 통해 3~4백명의 관객들이 미리 13곡을 듣고 몇몇 분들은 블로그에 글을 올려 평을 해 주셨다"며 "저를 비롯해서 어느 누구도 '어, 저곡 표절 아니야?'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박 PD는 "내가 들어보니 노래가 다른 곡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는 누구든지 할 수 있다"며 "하지만 요즘처럼 주목받는 신곡이 나오기만 하면 누구 노래 카피라는 무책임한 단정이 인터넷을 통해 난무했던 시기도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대상을 받은 이들의 노래말처럼 개성 없는 이 세상이 지겨워지지 않도록 진정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팬들의 입장이라면 (좀 거친 표현입니다만) 남 잘되는 것을 시기해 억지스러운 한 두 가지의 말꼬리를 잡아 뭔가를 자꾸 끌어내리기 보다 그네들의 음악적 성과들을 다각도로 조명해주고 평가해주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 jdn@joins.com

다음은 전문

대학가요제를 마치고 엔트리들과 지난 몇 주에 대한 이야기를 밤새 했습니다. 그들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곡작업 진행과 연습으로 바빴고, 우리 제작팀은 대학가요제 공연과 관련된 제반 준비들로 쏜 살 같이 지나가 버린 시간들이었습니다. 수상여부와 관계없이 엔트리들이 한결같이 전했던 소감이 생각납니다. "재미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다소 진부해 보이는 표현이지만 이 말은 빠지지 않더군요. 다들 느낌을 압축해보면 이런 느낌이었나 봅니다. 몇 년 전에 대학가요제 연출을 맡았던 선배의 후기에서도 이 말을 본 것 같습니다. "재미있었다. 꼭 후배 피디들도 연출할 기회를 가지기 바란다. 강추!"

문득 첫날의 쇼케이스를 마치고 만난 엔트리들의 공통된 표정이 생각납니다. '어, 이거 장난이 아닌데?' 다들 학교에서는 어느 정도 음악성이 있다고 인정받는 친구들인데 막상 13팀이 모여 공연을 하고 남들 노래하는 걸 들어보니 절로 긴장이 되었나 봅니다. 그날 다들 밤새 창법을 부분적으로 수정하고 시선처리나 무대매너 등을 자기네들끼리 고민해서 많이 바꿨더군요. 둘째 날 쇼케이스를 보면서 그걸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공연이 꽤 잘 되겠다고 예감했습니다. 저 정도의 음악적 욕심이면 열흘 후엔 꽤 많이 다듬어져 있겠다 생각했구요.

그날 모든 엔트리들이 첫 술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전에 같으면 MT형식의 합숙을 통해 개인적으로 친해졌는데 올해는 두 번의 쇼케이스를 통해 서로의 장단점과 실력도 정확히 알게 되고 인간적으로도 많은 친근감을 느꼈다고 하더군요. 서로의 고민도 털어놓고, 나름 진지하게 조언도 해주면서 밤새 음악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소간의 흥분과 기대, 불안감이 중첩된 삼십 여명의 얼굴들을 보며 프로듀서 입장에서 많은 재미를 느꼈던 것도 솔직히 고백해야 겠습니다. 술에 취해 몇몇은 "왜 우리를 뽑으신 거예요? 쟤들 저렇게 잘 하는데…"라고 이야기했구요, 끊임없이 팀원들이 번갈아 옆자리에 앉으면서 "예선부터 계속 지적되는 단점이 있는데요, 우리가 뭘 바꿔야 할까요?"라며 자문을 구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다들 긴장되는 중에서도 상을 타겠다는 의지가 강했던 것 같습니다. 또 어떤 집단이나 그런 경쟁심이 건강하게 키워졌을 때 좋은 형태의 발전도 있게 마련이구요. 주변의 방송관계자들이 "올해 팀들은 어때?"라고 물으면 주저없이 "올해는 다 좋아!"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대상은 누구일 거 같애?" 라고 물어보면 한동안 머뭇거렸습니다. "글쎄…" 3차 예선을 마치고 13팀의 엔트리를 확정했을 때만 해도 2~3팀이 명확했는데, 멘토를 만나 음악적 조언을 듣고 자기네들 나름대로 끊임없이 음악을 다듬다 보니 다들 완성도가 상향 평준화 되었다고나 할까, 10여 팀 모두가 음악적 색깔이 다르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겁니다. '어, 이거 큰 일인데… 올핸 심사위원들 고생 좀 하겠군.'

공연 당일 두 끼를 굶고 밤새 술을 마신 탓에 오후 늦게야 눈을 떠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많은 문자가 와있고, 모르는 번호가 여러 개 찍혀있더군요. '기자들이군…'이라 생각하며 그 중 아는 번호의 기자에게 전화했습니다. 어제 공연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고 말미에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지금 군계무학 표절논란이 벌어지고 있다"구요. 그냥 웃었습니다. '하여튼…'

그 전화를 끊고 왜 재범이가 생각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최근 몇 달 동안 음악중심을 연출하면서 봐왔던 2PM 일원으로서의 그 친구 모습이나 월초에 "인천 코리안 뮤직 웨이브" 특집을 연출했을 때 만났던 (당일 오전부터 예의 그 사건이 불거지기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재범이의 눈빛은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애답지 않은 진지함"을 가득 담고 있었습니다. 무대가 보통의 스튜디오에 비해 아주 컸기 때문에 평상시의 안무로는 해결할 수 없으니까 무대 한 켠에서 자기네들 끼리 안무를 바꾸고 다시 짜가면서 열심히 맞추고 있더군요.

그날 밤 이후 그 친구에게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참 인터넷과 (일부분이긴 하지만) 기자들이 무책임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누군가가 '이런 저런 사실들이 있다더라'하고 선동을 하니까 그게 얼마나 남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에 대한 배려도 없이 너도나도 따라가기 바빴던 거죠. 네이버 메인에 올라가기 위해 수백 건의 기사가 경쟁적으로 자극적인 카피들을 쏟아내니까 마치 그게 대한민국 사람들 전체의 의견인양 호도되고 결국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버린 것입니다. 누군가를 해하기 위한 악의적인 글들을 왜 냉정한 판단 없이 그렇게 무책임하게 재생산해야 하는지, 만일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판명되면 그에 대한 책임을 질 건지, 그리고 그게 만일 자기 일이라면 그렇게 민망하게 기사를 쓸 수 있는 건지…

그 길로 일어난 김에 이른 저녁을 먹다가 다른 기자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더군요.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마치 죄를 진걸 인정하라는 듯한 첫 질문… 저는 그냥 "어이가 없다"고 했습니다. 대학가요제의 공식적인 입장은 뭐냐고 묻더군요. 그냥 웃었습니다. 무슨 큰일이 나서 대책회의가 소집된 것도 아니고 공연 잘 마무리 돼서 밤새 술 마시고 겨우 눈 뜬 사람한테서 무슨 공식적인 입장을 들을 수 있을까요? 수 차례의 예선들을 거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보고 확인하면서 추려온 엔트리들. 그네들의 곡이 표절이 아니냐며 물어오는 데는 진짜 어이가 없더군요.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검색하니 가관입니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습니다. 재범이 사건 잠잠해지고 나서 잠시 찌그러져 있더니 이네들이 다시 흥미로운 먹잇감을 찾았나 봅니다. 나름 반성하는 빛을 보이더니 또다시 완장 찬 사람들이 활개를 치며 마녀사냥이 한창이더군요. 붉은 완장을 찬 사람이 대중들이 들으면 잘 모르는 코드, 소절 등의 단어를 마구 동원해 선동하면 푸른 완장을 찬 사람은 그걸 여기저기에 떠들고 다닙니다. 심지어 몇몇 기자들은 전에 올린 기사를 몇 마디 바꿔서 수시로 계속 올립니다. 덕분에 군계무학, 리쌍, 광대 등의 단어들이 네이버 검색어 순위 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라는 심사위원은 뭐했냐?'라는 류의 막말이 난무하고, '상대적으로 최저점을 준 노브레인의 이성우는 표절을 알았다'는 대목에선 결국 실소가 터지고 맙니다. "대상 수상자가 곡을 주신 선생님께 감사하다고 했다"라는 기사도 있더군요.

또 그 밑에는 '대학가요제는 대학생들이 직접 만든 곡으로 나가는 데 아닌가요'라는 댓글도 있구요. 이 쯤되면 중증입니다. 방송을 보지도 않고 남들이 선동하는 것을 받아썼다는 이야기밖에 안되는 거죠. 코드가 같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런 코드의 인트로 조합이 얼마나 나올 수 있는지 수학적으로 계산을 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일부 코드 순서만 같다고 표절 운운한다면 통기타 하나로 연주한 옛날 포크 송들이나 들으면 솔직히 다 리듬이 비슷한 힙합이나 레게는 상당수가 다 표절이겠네요. 어떤 이는 리쌍의 곡에 대상곡을 얹으면 그냥 노래할 수 있다고도 하더군요. 그럼 BPM이 같으면 다 표절이라는 이야긴가요? 직업적인 작곡가들이 무슨 러시아나 핀란드 같은 그런 먼나라 곡들을 몰래 카피한 것도 아니고 누가 들어도 아는 리쌍의 노래를 표절해서 그 친구들이 무슨 이득을 얻었을까요?

13팀의 엔트리들을 뽑기 위해서는 3차의 예심을 거칩니다. 수 백곡 중에는 실제로 누군가의 노래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있어서 탈락된 경우도 여러 곡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는 가수, 작곡가들을 비롯해서 TV, 라디오, 편성 등 제작관련 각 부문의 피디들이 폭넓게 참여했구요, 그리고 두 번의 쇼케이스를 통해 3~4백명의 관객들이 미리 13곡을 듣고 몇몇 분들은 블로그에 글을 올려 평을 해 주셨습니다. 공연직전까지 진행된 네티즌 인기상 투표에는 확인해보니 3,368명이 참여해주셨구요, 당일에는 9명의 대중문화관련 전문가들이 성의있게 심사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를 비롯해서 어느 누구도 '어, 저곡 표절 아니야?'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습니다. 다른 12곡들도 마찬가지지만 그 독창적인 분위기와 노랫말, 멜로디 진행에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혹자는 또 멘토를 맡아준 하림씨에게 화살을 돌리기도 하더군요. 아마추어인 대학생들에게 완벽한 편곡이나 무대매너 등을 기대할 수 없어서 팀당 (제작진이 보기에 컬러가 비슷한) 한 명씩의 아티스트들에게 한 두 시간 동안의 조언을 부탁했던 것이 마치 무슨 하림씨가 표절을 사주한 양 소설을 쓸 때에는 정말 어이없는 정도를 벗어나 화가 났습니다. 다들 바쁜 시간을 쪼개서 엔트리들을 만나 자기 일처럼 조언해 주었고 공연을 마친 후 엔트리들이 덕분에 음악적으로 큰 성장을 했다며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해달라던 사람들이었는데 말입니다.

내가 들어보니 노래가 다른 곡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는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처럼 주목받는 신곡이 나오기만 하면 누구 노래 카피라는 무책임한 단정이 인터넷을 통해 난무했던 시기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마치 무슨 게임을 하는 양 여기저기서 비슷한 곡들을 찾아내 네이버에 올리고, 싸이에 올리고, 거기에 매체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어 반응하면 의기양양해 하고… 그러다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면 순식간에 말꼬리를 낮춰 익명의 숲으로 사라지고… 이번에 대상을 받은 이들의 노래말처럼 개성없는 이 세상이 지겨워지지 않도록 진정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팬들의 입장이라면 (좀 거친 표현입니다만) 남 잘되는 것을 시기해 억지스러운 한 두 가지의 말꼬리를 잡아 뭔가를 자꾸 끌어내리기 보다 그네들의 음악적 성과들을 다각도로 조명해주고 평가해주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남이 해 놓은 것을 헐뜯는 것보다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훨씬 더 이 세상을 살 맛 나게 하고, 백 배 이상 어렵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기 위해 그네들이 고민하며 쓴 가사를 찾아보니 예의 그 전반부 가사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군요.

"피기도 전에 짓밟혀 버린 꽃입니다. 음악일 뿐입니다. 듣고 흘림 그만이지 뭐 나그네 뮤지션 개똥 철학의 서사시 편하지 않은 선의의 해코지 뻔할 뻔 자 만큼 fun하지 않은 개념을 상실한 젊음은 모두다 유죄…"

삶에 대한 진지함은 그 진지함으로 평가받고 보상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절대 싸구려 사료가 되어 안주접시에 올라서는 안될 것입니다. 방송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이지만 곡을 만드는 작업도 수많은 수정과 자기 검증을 통해 만들어지는 성과물입니다. 그 과정은 그렇게 통속적이지 않고, 적어도 제가 아는 대한민국 뮤지션들은 자신의 성과물에 무한한 자부심을 가지고 작업합니다. 이번에 함께한 13팀의 엔트리들도 비록 아마추어이긴 하지만 그 정도의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지고 작업했구요. 저는 그런 성과물들이 대중들에게 진심을 통해 소비되길 원합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그 천박함의 폐해는 온전히 그 수용자의 몫일 겁니다. 예전에도 그랬구요, 앞으로도 영원히…

그리고, 원래 오늘 올리는 제작후기를 통해 엔트리들에게 하려고 했던 말도 마지막에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인천에서 올라오는 버스 속에서 DMB를 통해 두 시간 딜레이로 방송되는 대학가요제를 보며 순위와 관계없이 서로에게 진심으로 박수 쳐주고, MBC앞에 도착해서도 한 명도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30여분간 방송이 끝날 때 까지 화면을 함께하며 시상 순간에 눈물과 웃음을 함께한 여러분들이야 말로 진정 우리나라 대중음악계의 희망이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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