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 불안했던 저소득층 아이, 10개월 만에 성격 밝아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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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호 20면

지난 24일 오후 서울시 남산도서관 5층 독서상담실. 독서치료 전문가인 이현희 독서상담실장이 아이 셋을 대상으로 특별수업을 진행 중이었다. 지난해 말부터 매주 한 차례씩 10여 개월째인 이 수업은 초등학교 6학년·4학년인 자매를 위한 것이다. 이들 자매의 아버지는 공사장 일을, 엄마는 봉제 일을 한다.

도서관이 좋다 2 남산도서관 독서치료 프로그램

주말에도 둘이 집에서 TV를 보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말 처음 이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만 해도 아이들은 정서가 불안하고 자신감이 없었다. 동생은 글을 읽을 줄 몰랐다. 지금은 달라졌다. 성격이 밝아졌다. 이제는 도서 대출회원증을 만들어 스스로 만화책이나 동화책을 빌려간다. 이 실장은 “이날 공부한 『숲속으로』라는 동화책의 내용처럼 자매들도 어두운 숲길의 무서움을 이기고 자아를 찾을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남편의 알코올중독 때문에 불화를 겪던 40대 주부도 독서치료 효과를 톡톡히 봤다. 이 주부는 가정·부부관계 전문서적을 중심으로 치료를 받으면서 남편을 용서하고 대화를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고 한다. 자가치료에 성공한 그는 독서치료사 1급 자격증을 딴 뒤 대학원 문헌정보학과에 진학했다고 한다.

이들은 남산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사서와 함께하는 독서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독서치료(bibliotherapy)란 책을 처방해 가족·친구·직장생활 등에서 생기는 응어리를 치유하는 것이다. 남산도서관의 독서치료 프로그램은 2005년 ‘나무를 심는 사람들’이라는 사서들의 자발적인 모임에서 시작됐다. 이후 독서치료사 자격증 제도가 도입됐고, 2008년 초엔 1·2급 자격증 취득자가 60여 명에 달했다.

이들은 부부관계·직장관계·분노·우울증 등 상황별 주제를 정해 주제별로 자가치유서 6권씩 모두 172권의 도서 목록을 선정해 독서치료에 활용하고 있다. 프로그램 참가자들의 만족도는 높다.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서울 봉은중학교 학부모 도서반 회원은 “독서치료 프로그램이 정신병원보다 나은 것 같다”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프로그램에서는 개인의 성장을 위한 『끌리는 사람의 백만불짜리 매력』, 고(故) 장영희 서강대 교수의 『문학의 숲을 거닐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 스콧 펙이 쓴 심리상담서 『아직도 가야 할 길』 등이 인기서라고 한다. 독서치료 프로그램이 본격 가동된 건 2007년 8월 서울시내 8개 도서관이 연합으로 시작하면서였다. 그해 1280여 명이 참여했다. 이는 2008년 18개 도서관, 4702명으로 늘었고 올해 22개 도서관에 현재까지 참가자는 3376명이다.

유송숙 남산도서관 자료봉사과장은 “독서치료는 도서관과 사서들의 블루오션”이라며 “지금 중·고교를 찾아가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시켜 장애자·미혼모들을 찾아가는 서비스를 시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현애 숙명여대(문헌정보학과) 외래교수는 “독일에선 독서치료가 의료보험 대상일 정도로 치료 효과를 인정받고 있다”며 “독서치료의 성패는 자기가 처한 상황과 욕구에 최적인 책을 선정하느냐 못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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