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구려사 왜곡 시정 지금 방법으로는 안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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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크' 박기태 단장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문제요? 제 사견인데요, 지금 우리 정부가 하는 반대로만 대응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정부는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만 매일매일 쳐다보면서 왜 안 고쳐주나, 하고 있잖아요. 하지만 제가 중국입장이라도 뭐가 아쉬워서 그냥 고쳐주겠어요. 10년 전처럼 중국이 한국의 기술을 이전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한국이 중국에 수출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잖아요. 오히려 중국과 무역거래를 많이 하는 다른 나라를을 대상으로 중국의 역사왜곡을 알려야 합니다. '상도'에 어긋나는 나라라는 점을요. "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VANK,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를 이끌고 있는 박기태 단장(31)의 말이다. 반크는 세계 각국 지도나 사이트에서 '일본해'를 '동해'로 바로잡는 활동으로 널리 알려진 민간단체.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으로 우리 역사에 대한 네티즌들의 관심이 한층 높아진 요즘도 반크의 활동은 쉼없이 뉴스를 만들어내고 있다. '미국 NBC방송의 아테네 올림픽 사이트에 한국의 공식언어로 한국어와 영어가 병기돼 있다''캐나다 온타리주에서 사용하는 고등학교 화학교과서의 세계지도에 한반도가 생략돼있다'등 정말로 인터넷에 눈밝지 않고는 알기 어려운 사실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반크 발'기사로 소개된다. 반크에는 인터넷 검색 전문가가 수십, 아니 수백명이라도 되는 것일까. 이런 상상과 달리 기자가 찾은 서울 중구 신당동의 작은 사무실에는 박씨를 포함, 다섯명의 상근자가 전부였다.

▶ '반크'의 상근자 5명이 한자리에 모여 포즈를 취했다.

"저희를 한국에 관한 오류찾기를 전문으로 하는 단체로 오해하는 분들이 많아요. 오류찾기는 해외 펜팔친구 사귀기.사이버 국제 학급 교류.국제협력네트워크 구축.20만 사이버 외교관 양성 등 저희가 펼치는 아홉가지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일뿐입니다. '동해'문제도 그래요. 그 덕분에 저희가 유명해졌지만, 그게 목적은 아니거든요. "

박씨가 들려주는 반크의 출발점은 지극히 개인적인 동기였다. 6년 전 서경대 일어일문학과 대학생이던 박씨는 비용이 많이 드는 해외어학연수 대신 이메일 펜팔이라는 대안을 찾아냈다. 때마침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있던 때라, 한국홍보의 효과도 거둘 수 있으리란 생각이었다. "전세계 대학, 특히 아시아 학과가 개설된 대학게시판을 찾아가 안내글을 남겼어요. 2002년 월드컵이 열리는 나라, 한국과 교류하자, 당신만을 위한 사이버 관광가이드가 돼주겠다, 이렇게 말이죠. "

그 거점으로 시작된 박씨의 개인홈페이지는 관심있는 네티즌들이 몰려들면서 지금의 반크 사이트(www.prkorea.com)로 발전했다. 회원수는 99년 3월 사이트 개설 이후 넉 달만에 학생.주부 등 4백여명으로 늘어났고, 다시 6년이 지난 지금은 국내 1만3천여명, 해외 3천여명에 이른다. 여기에 반크가 수시로 새 뉴스를 만들어내는 저력이 숨어있다.

"1만3천여명의 회원들이 하루에 한 건, 아니 평생 한 건씩만 찾아내도 반크로서는 매일 새로운 사실을 찾아내게 되는 거죠. 그 중에 비교적 중요한 내용을 뉴스레터로 알리는데, 이걸 받아보는 회원 중에 기자들도 있다보니 따로 보도자료를 내지 않는데도 기사화가 되곤 합니다. "

반크의 활동이 큰 주목을 받으면서 언론인.학자 같은 전문가 회원도 많아졌지만, 반크의 회원은 70% 정도가 학생들이다. 박씨는 "처음부터 특히 초중고 학생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고 돌이킨다.

"정부에서 주도한 모임이었다면 100% 실패했겠죠. 영어공부.해외문화 습득 같은 개인적인 동기가 제일 중요해요. 저희가 제시하는 출발점은 외국친구를 사귀라는 것이에요. 사귀다 보면 처음에는 오늘 뭐했니, 무슨 영화가 인기니, 이런 얘기들로 시작하다 6개월쯤 지나면 자연스레 역사얘기가 나와요. 마치 연애하다보면 나중에는 아버지 뭐하시니, 하는 얘기가 나오는 것처럼요. 친구가 매일 접하는 교과서에 한국이 어떻게 나와있는지도 궁금해지고, 마치 한국이 중국의 속국인 것처럼 잘못 나와있다면 당연히 바로잡아주고 싶어지죠. 친구에게 재미있게 한국에 대한 얘기를 해주려고 하다보면 학교에서 배웠다가 다 까먹은 역사지식도 새롭게 공부하게 돼죠. 제일 좋은 공부법은 남을 가르치는 거라고 하잖아요. 결국 매일의 활동이 한국을 알리는 전령사 역할이 되는 거죠."

박씨는 "동해.독도.고구려사 같은 이슈 때문에 가입한 회원들은 오히려 꾸준히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사실 반크의 회원으로 제 몫을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일단 가입을 하고 나면 '사이버 외교관'양성코스가 기다린다. "외교관이 되기 위한 외무고시가 있듯, 일종의 사이버 외무고시에요. 영어로 자기 소개하기, 다섯 명 이상 외국친구와 펜팔하기, 외신 번역하기, 해외사이트나 문헌의 한국에 대한 오류찾기, 오류의 시정을 요구하기, 등등 14가지 과정을 이메일로 마쳐야 합니다. "회원가입 후 이 과정을 마치는 비율은 10%정도라고 한다. 반크의 9대 사업중의 하나가 '20만 사이버 외교관 양성'인데, 과연 언제쯤 실현이 가능할까.

"저희는 10년을 내다보고 있어요. 1만3천여명이 20만명이 되고, 그 20만명이 전세계 1백만명과 교류하면 되는 거죠. 처음 사귈 때는 학생이었던 사람들이 언젠가는 그 나라 공무원도 되고, 정치인도 되고, 학자도 되겠죠. 나중에 이런 문제가 유네스코같은 국제무대에 상정되면, 그 쪽에도 반크회원들과 사귀었던 사람이 없을 것 같으세요?"

박씨는 대학졸업 후 2년간 다른 직장생활을 하면서 반크 운영을 병행하다 결국 휴직계를 냈다. 회원수가 늘어나면서 할 일이 점점 많아진 때문이다. 그는 "예전에는 시간이 부족해서 못하던 활동을 실컷 할 수 있어서 너무 너무 좋다"고 했다. 사무실 운영경비같은 돈 문제는 그에게 우선 순위가 아닌 듯 했다. "일단 회원에 가입하면 평생회비로 2만원씩을 내요. 그리고 저희 활동을 소개하는 책 '사이버 외교관, 반크 '도 인세 수입이 좀 있구요. 여기에 이런저런 짜투리 돈이 가끔 생기니까, 매달 일정하지는 않아도 꾸려갈만 합니다. "

박씨는 교육부같은 정부 부처에서도 이따금씩 반크에 의견을 청한다고 전했다. "동해 문제로 저희도 노하우를 많이 쌓았어요. 심지어 일본 외무성에서도 저희같은 작은 단체를 주목하더라고요. 저희가 시정요구를 해서 '일본해'를 '동해'로 바로잡은 곳에는 는 일본쪽에서도 또 항의서한을 보내곤 합니다. "

이런 반크의 활동이나 고구려사 왜곡문제에 대한 반응 같은 것을 두고 '요즘 네티즌들의 민족주의적인 성향에 놀랐다'고 하자, 박씨는 일단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희를 나라를 너무 사랑해서 모인 모임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많아요. 저희 캐치프레이즈 가운데 '아시아의 중심, 동북아의 관문'같은 표현 때문에 오해가 생기는 것 같은데, 핵심은 그 다음에 나오는 '전세계 모든 이와 꿈과 우정을 나누는 나라'거든요. 돈이 있어야, 힘이 있어야 리더가 된다는 건 옛날 방식이죠. 중국이 땅이 많다고, 일본이 돈이 많다고 리더가 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교류를 통해 자발적으로 리더쉽을 인정받아야죠. 한국은 베푸는 리더십입니다. 저희가 해외 학교와 학급교류 활동도 펼치는데, 그쪽 선생님들이 그러세요. 아이들이 일본이나 중국과 사귈 때랑 다르게 한국아이와 사귀면 바로 한국과 사랑에 빠진대요. 사귄 지 몇 달 안되도 갖은 선물을 보내곤 하는 게 한국사람들이니까요."

박씨의 말이 이어졌다.

"한국이 아시아의 중심국가가 될 수 있을까, 의문스러워하는 사람도 많지만 제 생각은 이래요. 대륙과 섬을 연결하는 반도국이라서 대륙과도, 섬과도 교류가 가능하고, 사계절이 있는 나라라서 열대 나라와도 한대 나라와도 얘기가 잘 통하죠. 황인종이라서 백인과 흑인이 섞여 있는 사이에서 고루 리더가 될 수 있구요. 아니, 왜 웃으세요. 제 오랜 해외교류 경험에서 나온 것인데."

사실 한 대학생의 개인홈페이지가 지금같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네티즌들의 모임이 될 줄은 아마 6년 전에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한 명의 해외친구를 사귀면 전세계 60억이 한국을 사랑하게 된다'고, 반크가 꿈꾸는 미래를 지금 기자의 상상으로 가늠할 수 있겠는가.

박씨는 의자를 당겨앉더니 컴퓨터 화면을 보여줬다. 최근 한 게임사이트와 공동으로 PC방의 게이머들을 대상으로 '동해'가 잘못 표기된 사이트를 찾는 대회를 진행중이었다. 하룻만에 올라온 제보가 8백여건. 물론 사실여부는 다 확인해보지 않은 상태지만, 이것만도 반크 회원들이 6년간 제보한 1500여건의 절반이 넘는 엄청난 양이다. "이게 게이머들의 힘이에요. 우리나라 초중고의 컴퓨터 시설이 세계적이라고 하잖아요. 이것 역시 한국 바로알리기의 전진기지로 활용할 수 있죠. "

반크의 활동은 온라인에만 머물지 않는다. 반크가 보급한 '동해'를 표기한 세계지도를 갖고 한국 알리기 수업이 세계 각지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박씨는 "온라인의 지식이 오프라인으로 뛰쳐나가는 걸 볼 때 제일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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