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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특집] 본사, 당시 평양주재 蘇대사 비망록 입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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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중앙일보는 6.25 49주년을 맞아 휴전협정이 체결되던 1953년 당시 평양 주재 러시아대사였던 수즈달레프 비망록을 단독 입수, 그 내용을 공개한다.

이 문서에는 휴전협정에 누가 서명할 것인지의 문제를 놓고 공산측 수뇌부가 막후 (幕後)에서 벌인 협상 전말이 비교적 자세히 담겨 있다.

또 반세기가 지나도록 풀리지 않는 한국전 의혹들, 그리고 분단 이후 날로 심각해진 남북한 언어 이질화 현황 등을 짚어봤다.

53년 7월 27일 당시 북한 김일성 수상은 그의 신변안전을 우려한 중국.소련의 적극반대로 판문점 정전협정 조인식에 불참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최근 본사 통일문화연구소가 러시아 외무부 문서보관소에서 단독 입수한 '수즈달레프 (1953~55년 평양주재 소련대사) 비망록' 에서 처음 확인됐다.

당시 김일성이 판문점에 나타나지 않자 '전용기 폭격설' '숙청설' '암살설' 등 구구한 억측이 나돌았으나 지금까지 그의 불참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김일성은 그러나 그해 6월까지만 해도 자신이 직접 판문점에 참석할 의사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비망록' 에는 수즈달레프가 6월 16일 김일성을 만나 "다른 사람이 서명하면 정전협정의 권위가 떨어질 것" 이라며 참석을 권유하자, 김일성이 "6월 13일 이전까지는 판문점 참석 문제를 놓고 동지들간에 이견이 있었으나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이 서명할 것이라는 미국측 공식통보를 받고는 내가 직접 가기로 결정했다" 고 대답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7월 6일 수즈달레프가 김일성을 만나 "휴전협정 서명을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라" 는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간부회의 결정을 통고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된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도 다음날 소련의 결정을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수즈달레프는 휴전협정을 불과 이틀 (7월 25일) 앞두고 펑더화이 (彭德懷.중국군사령관)가 "수상인 김일성이 협정에 서명할 필요는 없다" 는 중국의 입장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결국 김일성이 협정서에 서명은 하되 판문점에는 나가지 않는 것으로 협상대표를 둘러싼 논란은 종결됐다.

'비망록' 에는 김일성의 판문점 참석에 중국이 먼저 반대했으며, 여기에 소련정부가 동의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결국 중국과 소련은 휴전을 앞두고 미국의 폭격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김일성.펑더화이의 신변안전을 가장 우려했기 때문인 것으로 확인됐다.

수즈달레프는 6월 16일 김일성의 신변안전을 처음 거론했고, 7월 4일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간부회의도 김일성과 펑더화이가 당연히 대표로 판문점에 나가야 되겠지만 역시 신변안전이 가장 우려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7월 27일의 휴전협정은 김일성과 유엔군.중국군 최고사령관은 불참한 가운데 유엔군측 해리슨 중장과 북한측 남일 대장이 판문점에서 서명하고 이를 본국 사령부에 송부한 뒤 클라크 사령관.김일성.펑더화이가 추가로 서명하는 기이한 형태로 마무리됐다.

정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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