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기 왕위전 도전기 3국' 이창호, 치욕의 포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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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38기 왕위전 도전기 3국
[제3보 (41~60)]
黑.이창호 9단 白.이세돌 9단

어느 것이 크고 어느 것이 작은 것인가를 알면 고수다. 크고 작음에 따라 착수의 우선순위도 정해진다. 한데 크고 작음은 상황이 바뀌면서 계속 변한다. 대세점이나 전략의 일관성이 눈앞의 현금보다 더 클 때가 있는가 하면 그 반대도 있다.

이창호9단은 흑▲로 상변의 현금에 집착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이세돌9단의 백△가 폐부를 찌르는 호착이어서 후회를 가중시키고 있다. 이창호는 '손해없이 귀를 잡아야 한다'는 어려운 수수께끼에 부닥쳤다. 풀면 본전이지만 풀지 못하면 나락으로 떨어진다.

'참고도'흑1로 잡는 것은 오답이다. 백2,4로 살아버리면 본래 흑진이었던 곳에 백집이 흑집보다 많이 나게 된다. 이창호는 41,43으로 난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세돌은 44로 연결해 놓고 가만히 이창호를 본다.

흑은 진퇴양난이다.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패망선이라 불리는 2선을 포복하면 간신히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이건 진흙밭을 기는 것과 같아 보통 치욕이 아니다.

하지만 다른 길이 없는 이창호는 얼굴을 붉히며 기어나간다. 59까지 벌써 네번이나 패망선을 기었다. 한번 길 때마다 겨우 한집씩 늘어난다. 아니다. 지금은 다 놓고 잡아야 하니 한집도 늘어나지 않는다. 돌의 효율에서 지금의 포복은 제로에 가깝다. 그 사이 백은 중앙에 두툼한 세력을 펴고 있으니 이세돌은 우하를 죽였으되 뼈다귀 국물까지 다 우려낸 셈이다.

60으로 막아 흑과 백은 똑같이 여섯수. 잡으려면 당장 손을 써야 한다. 그러나 흑이 만약 후수를 잡아 A를 당하는 날엔 절망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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