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자가 이익 못 내는 것은 죄 … 그때 나는 죄인이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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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복조 토러스투자증권 사장은 “이익을 내는 것은 경영자의 숙명”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가을. 찬바람과 함께 여의도 증권가에는 괴소문이 돌았다. 국내 자본시장 역사상 최단 기간에 망하는 증권사가 나올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불명예의 당사자로 지목된 곳은 지난해 5월 출범한 토러스투자증권. 은행이나 대기업 등 든든한 계열사를 ‘뒷배’로 두고 있는 곳과 달리 토러스증권은 손복조(59) 사장 등이 지분을 고루 나눠 갖고 있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난 지금 토러스증권은 신설 독립 증권사 가운데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다. 출범 후 첫 회계연도(2008년)에 적자를 내기는 했지만 올해는 흑자를 내고 있다. 국민연금과 우정사업본부의 분기별 증권사 평가에서는 올 2분기에 60여 개 국내 증권사 가운데 3위에 올라섰다. 손 사장을 만나 금융위기를 이겨내고 살아남아 자본시장에 안착하기까지의 과정을 들어봤다.(※는 편집자)

-지난해 회사 출범 때 설립 첫해부터 흑자를 내겠다고 했다. 그런데 적자를 봤다.
“금융기관이 설립하면 최소 3년은 지나야 흑자 전환할 수 있다고 한다. 국내 최초 보험사인 교보생명이 흑자 낼 때까지 30년 걸렸다. 꾸준히 들어오는 보험료로 버틴 거다. 그 정도로 금융회사를 세워 흑자를 낸다는 게 어려운 일이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건방졌었지만 설립 첫해부터 흑자를 내겠다고 선언했었다. 자신 있었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계획이 흐트러졌다. 3월 결산을 하고 나니까 46억원 적자였다. 인프라가 없는 만큼 일단 브로커리지(위탁매매)를 통해 빠르게 수익을 내고, 거기서 나온 수익으로 증자를 해 덩치를 키워 성장하려고 했다. 그런데 시장이 꺾이니 주식 거래 자체가 뜸해졌다. 수익은 없는데 160명에게 월급 주고 임대료·전산설비료 등 고정비가 나가니까 적자가 쌓였다.”

-마음 고생이 심했겠다.
“‘세상의 모든 죄 가운데에서 사함을 받지 못하는 죄가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경영자가 이익을 못 내는 죄다’라는 이탈리아 속담이 있다. 이익을 내는 것은 경영자의 숙명이다. 그때 나는 죄인이었다.”

-신설 증권사 가운데에서는 비교적 잘 자리잡았다. 특히 리서치 부문의 성과가 놀랍다.
“리서치 부문이 두각을 나타낸 데는 리서치센터를 기업 분석이 아니라 전략 중심으로 꾸려나가겠다는 철학과도 맥이 닿아 있다. 토러스증권은 다른 증권사처럼 밑에서부터 훑는 ‘바텀업’이 아니라 큰 줄기를 먼저 보는 ‘톱다운’ 방식으로 시장을 분석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다른 증권사에서는 삼성전자 담당 애널리스트가 실적을 분석해 좋아질 것 같으면 목표주가를 높이고 매수 추천을 한다. 그러나 우리는 대형사처럼 개별 종목을 담당할 애널리스트가 많지 않다. 그래서 일단 글로벌 경기 흐름을 분석하고, 그에 따른 수혜 업종을 고른 뒤 그 가운데에서 유망 종목을 선정한다. 시장 상황에 맞는 종목을 추천하다 보니 시장 반응이 좋더라.”

-우수한 애널리스트를 고용하자면 돈이 많이 들겠다.
“160여 명 임직원 중 리서치센터 소속은 20명 정도다. 인원 수로만 따지면 리서치센터의 인건비 비중이 12.5%여야 하지만 실제는 30%를 웃돈다. 그렇다고 특별히 돈을 많이 주는 건 아니다. 다른 데 가면 우리 회사보다 더 받을 수 있는 애널리스트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회사에 열의를 갖고 일하는 것은 조직의 문화와 비전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고생한 직원들에게는 언젠가 충분한 보상을 해줄 것이다.(※토러스증권은 6월 이사회를 열어 임직원 144명에게 스톡옵션 400만 주(20억원)를 부여했다.)”

-지난해 가을 힘들지 않았나.
“8월까지는 괜찮았다. 자체 자금으로 주식을 투자해 버는 돈이 꽤 됐다. 그런데 8월 말부터 주식시장이 미끄러지면서 돈을 까먹기 시작했다. 자본금 300억원짜리 회사가 적자가 쌓이면 어떻게 되겠는가. 대외신인도가 하락했다. 금융회사가 ‘신뢰’를 잃는다는 것은 치명타다. 특히 딜링 룸(※증권사 자체 자금을 운용하는 곳)에서 주식을 사서 안 팔고 다음날까지 들고 가는 경우엔 새벽에 눈이 번쩍 뜨였다. 미국 증시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미국 증시가 떨어지면 개장 초부터 주가가 밀리니까 손실이 더 커지면 어쩌나 싶어서다.”

-그때 망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당시 금융감독위원회 감사 때 어느 국회의원이 ‘망하는 증권사가 나온다는 데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고 하더라. 그때 나온 이름이 토러스였다. 그 국회의원의 비서관을 찾아가 왜 그런 소문이 났는지 알아봤다. 우리랑 비슷한 이름의 LCD 제조업체가 있는데 키코(※KIKO·통화 관련 파생상품) 때문에 거액을 손해봤다. 그게 토러스가 선물 매매로 왕창 까먹어서 망하게 됐다고 와전된 거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의 출자와 관련, 인가 과정에 특혜 의혹이 제기됐었다. (※세중나모여행의 계열사인 세중아이앤씨가 3.33%, 천 회장의 두 아들이 3.33%씩 토로스증권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2007년 겨울 대우증권을 나와서 토러스 창립을 준비할 때 어떤 모임에 갔다가 천신일 회장을 만났다. 천 회장이 뭐하냐고 묻기에 증권사 창립 준비한다고 했더니 투자하고 싶다고 했다. 지배구조 분산을 위해 다양한 주주 구성이 필요하다 싶어 투자금을 받았다. 토러스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설립됐다.”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흑자 낸 비결은.
“시장이 회복되면서 딜링 룸에서 꾸준히 수익이 났다. 법인 영업도 자리 잡아가면서 본격적으로 수익을 내기 시작했고. 연초만 해도 하루 수익이 1000만~2000만원에 그쳤지만 지금은 5000만~6000만원으로 늘었다. 개인과 법인 등 자산가 대상의 랩어카운트 비즈니스도 성장 단계에 접어들었다. 2월 말 시작해 현재 운용자산은 주식만 300억원, 머니마켓펀드(MMF) 등을 다 포함하면 3000억원 가까이 된다. 대우증권 사장 시절에야 웬만큼 큰 딜이 아니면 내가 나서지 않았지만 지금은 직접 뛰어 고객을 유
치한다.”

-대우증권을 그만둘 때 섭섭하지 않았나.
“아쉬웠다. 건방질지 모르지만 대우증권이라는 조직을 위해서도 내가 연임하는 게 낫지 않았나 싶었다. 1조원밖에 안 되는 자기자본을 3년 만에 2조원으로 만들었다. 한 번 더 연임했으면 5조원으로 만들었을 거다.”

-올해 증시 전망과 유망 업종은.
“좋을 것 같다. 우리 리서치센터에서는 1850선까지 본다. 환율이 조금 우려스럽기는 하지만 한국 대기업의 경쟁력은 뛰어나다.”

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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