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447. 아라리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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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제10장 대박 ③

"신접살림 재미도 여전합니까?" "말은 재미있느냐는 것이 분명한데, 묻는 얼굴은 제발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상인데?" "넘겨짚다가 팔 부러뜨리지 말고 묻는 말에 대꾸나 하세요. " "내가 근력이 달려서 문제지 금실이야 남들이 질투할 정도지. "

"철부지들처럼 톡탁거리고 싸우진 않겠죠?" "왜 그러나? 자식까지 멀리 내쫓고 차린 신접살림인데, 애들처럼 쌈질이나 해? 싸우고 싶어도 벽에 걸린 것도 없고, 방바닥에 집어던질 것도 없어서 못 싸워. " "나이 차이는 많은 부분데 금실 좋다는 소문은 포구에 파다하더래요. " 어느새 비릿한 회쟁반을 받쳐든 묵호댁이 식탁 옆에 서 있었다.

다른 손에 들려 있는 소주병이 시선에 들어오는 순간, 변씨는 기겁을 하면서 맥주로 바꿔 달라고 소리질렀다. 차순진씨와 살림을 차리면서 식성조차 바뀐 모양이었다. 묵호댁이 얼른 달려가 맥주병을 들고 돌아왔다. 그녀가 컵에 맥주를 따라 주었다.

문득 가게에서 허드렛일이나 거들면서 빌붙어 연명하던 상고머리 심씨가 생각났다. 변씨에게 눈짓으로 심씨의 행방을 물었는데,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으로 대꾸는 묵호댁이 가로채고 말았다.

"그 자식, 옛날에 자취를 감춰버렸더래요. " 고개를 잔허리가 휘도록 한껏 뒤로 제치고 맥주컵을 바닥까지 쭉 비운 변씨가 흡사 남의 말처럼 들리는 묵호댁의 대꾸를 되받아 이죽거렸다.

"사내만 날렸으면 천만다행이게…. 곗돈 넣으려고 준비해 둔 뭉칫돈은 날리지 않았던가. 그 놈의 자식, 체수 생긴 것부터 오종종해서 처음부터 심에 차지 않더니, 결국은 꼴값은 하면서 사라지더라니까. 싱거운 내가 나서서 뒤를 밟아 보았지만, 숨는 데는 신창원이 뺨칠 정도더군, 신창원이는 그나마 간혹 냄새나 피우고 다니지, 이놈은 냄새조차 없어. " "묵호댁이 타격 컸었겠네?"

"타격은 무슨 타격. 포구라는 곳이 그런 일이 하루에도 몇 번씩 벌어지는 걸. 묵호댁 잠자리가 허전해서 탈이지, 그 놈이야 여자 보고 돈 보고 재미 보고 볼 것 다 보고 떠나 버렸지. 하지만 묵호댁도 그 놈하고 처음부터 팔자 고칠 생각은 없었을 것이야. "

"묵호댁이 찾지도 않았다는 거예요?" "찾아서 질질 끌고 와 보았자, 돌아와서 오래 빌붙어 있을 놈도 아니고, 후려간 돈 게워 낼 놈도 아니란 걸 빤히 알고 있는데 왜 찾어? 기둥뿌리까지 뽑아 가라고 찾어?" "그러고 보면 형님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형수씨처럼 알뜰하고 정숙한 여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형님 눈썰미는 지나쳐볼 게 아니에요. "

"그런 그렇고 승희하고는 어찌 됐나?" "기회를 노려서 정중하게 청혼을 했었는데,가차없이 퇴짜를 놓습디다. 농담 아녜요. " "그래? 농담 아니라면, 놀랄 일이네. 설마 그런 대답을 했을까?"

"잠자리는 스스럼없이 같이하면서도 결혼이라면 펄쩍 뛰는 거예요.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거지…. 자기 손으로 돈을 벌어 본 여자들은 그런 생각들 많이 하는 모양입니다. " 목이나 축이자고 들어온 식당에서 어느 새 맥주를 다섯 병이나 마시고 말았다. 한철규가 진작 일어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식당을 나서면, 필경 변씨가 자기 집으로 이끌 것이 틀림없었고, 그 경우 그 집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차순진씨를 오해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섬돌에 놓였던 신발은 변씨의 것일 수도 있었고, 설혹 다른 남자의 것이라 할지라도 그 방에서 과연 어떤 일이 있었는지 철규가 알 수 없었다. 짐작으로만 부정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예단해 버렸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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