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엄홍길과 김기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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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산사나이 엄홍길이 지난 19일 다시 히말라야로 갔다.

안나푸르나 등정 (登頂) 이후 불과 한달여만이다.

이번에 간 곳은 낭가파르바트. 그의 목표는 히말라야 8천m급 고봉 14座 완등 (完登) 이다.

낭가파르바트 등정에 성공하면 12좌째를 오르게 된다.

산악계 일각에서는 우려의 소리도 들린다.

마라톤 레이스를 방금 끝내고 바로 다른 경기에 나서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 강박심리가 지금까지 10좌를 오른 박영석을 의식해서라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그건 우리가 탓할 바 아닐 것 같다.

엄홍길은 생의 목적을 히말라야 등정에 두었고 그것을 실천할 뿐이다.

하늘 까마득히 솟은 4천5백m 직벽. 낭가파르바트의 루팔벽 앞에 선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가 믿는 것은 오로지 그의 기술과 용기, 그리고 히말라야 대자연과의 교감뿐이다.

신의 가호가 함께 하면 그는 언젠가 14좌를 모두 오를 것이다.

등반 사상 14좌 완등자는 라인홀트 메스너 (이탈리아).예지 쿠크츠카 (폴란드).카를로스 카르솔리오 (멕시코).에라르 로레탕 (프랑스).크지스토프 비엘리키 (폴란드).퍼니토 오아라사발 (스페인) 등 6명에 불과하다.

이중 예지 쿠크츠카는 히말라야의 로체 남벽에서 숨졌다.

라인홀트 메스너에게 누군가 물었다.

"많은 등산가들이 히말라야에서 죽어갔다. 당신은 죽음이 두렵지 않은가.

" 메스너는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내 죽음의 장소가 히말라야 설원이라면 나는 행운아다" 라고 답했다.

엄홍길이 오르는 낭가파르바트는 71년 메스너가 첫번째로 히말라야에 등정한 곳이다.

그때 그곳에서 라인홀트는 친동생이자 자일 파트너였던 귄터 메스너를 하산 도중 잃었다.

그후 그는 늘 동생과 같이 등정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채찍질했다.

그가 몸을 단련키 위해 '평지에서 10보 이상은 구보로 뛴다' 는 과장된 소문도 그의 마음을 대변한 것이었다.

엄홍길은 지난번 안나푸르나에 뛰어난 여성산악인 지현옥을 두고 왔다.

돌아온 그는 말이 없었지만 같이 간 대원은 그녀가 안나푸르나와 결혼했다고 했다.

귄터의 목소리가 라인홀트의 마음에 거대한 메아리로 맴돌듯, 엄홍길의 가슴에 지현옥의 죽음은 아름다운 부채로 남아 있을 것이다.

프로기사 조치훈은 "목숨을 걸고 바둑을 둔다" 고 말했다.

승부사의 비장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등산에는 세속적 승부가 없다.

진부한 표현이긴 하나 그곳에선 자신을 가혹하게 다그치는 수행이 있을 뿐이고, 마침내 자신마저 비워내는 승리만이 존재한다.

"산이 거기 있기에 간다" 는 조지 멀로리의 선적 (禪的) 대답의 이유가 거기 있다.

산은 용기와 귀의 (歸依) 를 가르친다.

자연을 향한 경외와 동화 (同化) 를 가르친다.

적어도 이런 점에서 한국사람들은 복받았다.

우리는 대부분 산자락 밑에서 태어나 산을 보며 자란다.

히말라야의 사람들은 그 산을 오르려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그 곳은 신의 땅이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에게 산은 어머니의 품이요, 자연이 제공하는 집이다.

한옥이나 초가의 지붕선이 집 뒷산 능선의 연장이라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므로 히말라야가 육체의 극한을 시험하는 용기와 경외의 대상이라면 한국의 산들은 귀의와 동화의 대상이다.

저녁 어스름 큰 바위와 봉우리의 침묵의 전언 (傳言) .한낮 능선 아래 산그림자와 수해 (樹海) .산속 밤하늘을 수놓는 별들의 장관을 보면 누구라도 '마음 속에 도덕률' 이 안생길 리 없다.

한국의 산수를 소요하던 운보 (雲甫) 김기창 (金基昶) 이 위독하다는 소식이다.

젊은 엄홍길의 모습에 운보의 붉게 주름진 얼굴이 겹쳐 떠오른다.

대걸레를 붓삼아 휘두르던 운보의 기개는 능히 히말라야에 비길 만했다.

청각장애의 '침묵의 포효' 또한 히말라야의 그것에 버금갔다.

그같은 호랑이의 기상에서 그러나 운보는 '바보산수' '바보화풍' 을 이끌어 냈다.

바보의 눈, 순수한 마음의 눈으로 자연을 그린 것이다.

운보의 삶은 등산과정을 연상케 한다.

그는 그 힘든 길을 오르며 그 자신이 하나의 자연이 되었다.

히말라야에 가고픈 마음은 우리의 산들이 넉넉하게 대신해 준다.

그러니 나에게 재주가 있다면 운보의 흉내를 내고 싶다.

보름달 뜨는 저녁, 그 우주의 대조명 아래서 모든 사람들이 동네마다 뒷산에 올라 덩더쿵 춤추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것이다.

이헌익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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