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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北 회담자세 이래도 되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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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남북차관급회담이 무산될 위기를 맞고 있다.

북측의 두차례 회담연기로 예정된 첫날회담은 무산되었고 앞으로의 회담 성사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우리는 이산가족 문제를 풀기 위한 이번 회담의 정상화를 촉구하면서 북의 바른 회담자세를 요구한다.북측은 회담 직전까지 대표단 명단을 통보하지 않았고 미리 정한 회담시간도 분명한 이유없이 두차례나 연기한다는 통보를 일방적으로 해왔다.

외교적 관례와 상식을 무시하는 북의 이런 회담자세를 보면서 이래도 되나 하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남북한 관계는 '나라와 나라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관계' 다.

남북기본합의서에 명시한 남북관계다.

그만큼 조심스런 특수관계다.

조심스런 관계일수록 의전과 격식을 중시해야 한다.

또 이번 회담은 장기간 예비접촉을 통해 회담 의제와 합의를 상당수준 도출하는 사전단계를 거쳤다.

이 합의에 따라 이미 우리는 10만t의 비료를 북으로 보냈다.

북이 뭔가 답을 해야 할 때가 지금이다.

그런데 북한의 회담자세는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고 있다.

최소한의 상식도 지키지 않고 있다.

서해 교전사태와 이산가족문제 회담은 별개의 의제고 별개로 접근해야 할 일이다.

더구나 서해 경계선 침범과 선제사격이 북의 주도로 이뤄진 것이 국제사회에 명백히 드러난 지금 와서 이 문제를 들고 불편한 심기를 이번 회담장에서 표출하는 것은 외교적 관행에도 맞지 않는다.

남측 도발이니 사망자 배상금 요구니 하며 의제를 벗어난 성명전으로 회담을 몰아간다면 이것은 예비접촉의 합의사항을 위배하는 것이자 이번 회담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번 차관급회담은 이산가족문제를 해결한다는 대전제 아래 만남이 시작된 것이다.

그것도 사전에 철저한 약속과 이행단계까지 서로 합의한 사항이다.

이산가족문제에 관한 한 남과 북의 입장차가 없음을 북은 여러차례 확인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해 사태를 빌미삼아 이번 회담의 판을 깨고 이산가족문제를 없던 일로 해버린다면 이는 1천만 이산가족의 한을 능멸하는 꼴이 된다.

우리는 어제일만으로 회담결과까지 예단할 생각은 없다.

다만 북이 이산가족문제를 서해 사태와 연관시켜 회담 본질을 희석시키거나 없던 일로 해버릴 때, 포용정책 이후 우리 사회에 형성된 대북 화해협력 분위기는 급속히 냉각될 것이고 더 이상 북을 믿을 수 없다는 여론이 고조될 것이다.

그리고 대북 화해협력의 포용정책도 빛을 잃을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북에 분명히 환기시키고자 한다.

이산가족문제라는 민족적 과제를 다른 문제와 연계시켜 흔들려 해선 안된다.

회담 자체 성격에 충실한 북의 성실한 대화자세를 거듭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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