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15일부터 '공포연극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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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공포를 즐기는 계절이 시작됐다. 영화와 TV에 이어 이제는 연극판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들릴 차례. 대학로 한 귀퉁이에 자리잡은 소극장 '혜화동1번지' 에서 7월15일부터 8월22일까지 '공포연극제' 가 펼쳐진다. 02 - 764 - 3375.

연극판의 공포잔치는 영화나 TV 드라마의 주무기인 피를 튀기는 잔혹 장면이나 특수효과를 앞세운 시각물 위주는 아니다.

그보다는 인간 내면의 은밀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공포심의 정곡을 찌른다. 그렇다고 미적지근할 것이란 속단은 금물. 이름에 걸맞게 순간 순간 소름이 쫙쫙 돋게하는 오싹하고 으스스한 공포를 확실히 보여준다.

다섯 연출가의 작품이 소개되는 이번 공포연극제는 택시기사와 소복을 입은 처녀귀신의 이야기에서 만득이류 귀신 이야기같은 잘 알려진 '고전적' 귀신이야기, 그리고 현대인의 스토킹 공포 등 시대상을 담은 것까지 다양하다.

먼저 7월15일~8월1일까지 이어지는 1탄에는 하루에 네 편의 소품이 무대에 오른다. 이 작품들은 원작의 줄거리 자체가 팽팽한 긴장을 지니고 있다.

김광보의 연출 '꿈' 은 독일작가 귀터 아이히의 옴니버스 형식작품 '꿈' 의 5편 가운데 두 편을 취했다. 이 작품은 인기TV시리즈 '환상특급' 처럼 인간의 기발한 상상력을 빌어 공포를 유발하는 것이 특징.

박근형 작.연출의 '귀신의 똥' 은 귀신의 똥을 먹은 거지를 괴롭히는 썰렁한 귀신이 등장한다. 손정우 작.연출의 '다림질하는 사람' 은 세탁소라는 좁은 공간 안에서 한 여자에게 광적으로 집착하는 한 사람이 끝내 살인을 저지른 뒤 그 시신을 끊임없이 다림질하는 그로테스크한 설정이다.

8월5일~22일까지 벌어지는 2탄 공포 페스티벌에는 연출가 이성열과 최용운의 작품이 나란히 소개된다. 장정일의 시 '심야특식' 에서 모티브를 얻어 이윤철이 쓰고 이성열이 연출한 '심야특식' 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택시 타는 처녀귀신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난해 '파티' 에서 이성열이 보여준 수준급 공포실력 덕분에 이번 작품도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박귀옥의 94년도 신춘문예 당선작을 최용훈이 연출한 '아빠!' 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 아버지의 장례식에 모인 사람들의 미묘한 관계가 드러내는 친부살해욕망과 성적욕망 등을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표현한다.

2탄의 공포페스티벌에 올려지는 두 작품 모두 원작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작품을 공동창작하는 방식으로 제작된다.

한편 지난해 훌륭한 기획에도 불구하고 일부 배우들의 뒤떨어진 기량 때문에 완성도가 낮았다는 지적을 받았던 혜화동1번지는 올해는 연습기간을 늘려 잡았다.

연출가의 자유로운 머리와 이를 표현하는 배우가 얼마나 조화를 이루느냐에 따라 올해 공포연극제의 성패가 갈릴 전망이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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