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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오르는 위성방송시대]하. 산적한 난제 어떻게 푸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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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할 일은 많고 된 일은 하나도 없다. " 위성방송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푸념이다. 앞길은 첩첩산중인데 나침반조차 없는 모양새다.

'주범' 은 방송법이다. 관계법이 없어 지난 5년동안 말만 무성했다. 그래서 더 이상 미뤄선 안된다는 현장의 목소리는 절박하다. 법이 해결돼야 본격 준비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권의 발표대로 이달 중 법이 통과해도 난제는 수두룩하다. 일부에선 내년 말 상용방송을 예상하지만 상황은 만만하지 않다. 그동안 관심을 보였던 대기업들이 속속 빠져나갔고, 케이블 방송에서 경험한 바 같이 마냥 손쉽게 달려들 분야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

하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 했다. 철두철미 상업방송인 위성방송의 특성상 면밀한 대비가 없이는 낭패보기 십상이다. 게다가 외국보다 시장이 영세한 우리로선 유의할 부분이 더욱 많다. 한국형 모델을 짜는데 현명한 지혜가 요청되는 것이다.

우선 위성방송 사업자 단일화가 급선무다. 과당경쟁에 따른 공멸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2월말로 활동 종료한 방송개혁위원회 최종안에서도 이 부분을 명시했고 관계자들의 공감대도 무르익었다.

문제는 어떻게 단일화를 이루느냐는 것. 일단 걸림돌은 제거됐다. 한국통신과 데이콤이 각각 추진했던 위성체 사업 (위성을 쏘아올려 임대하는 일) 이 데이콤 오라이언 위성의 궤도 진입 실패로 한국통신 쪽으로 자연스럽게 교통정리됐다.

그러나 위성을 빌려 채널을 구성하고 가입자를 관리하는 위성방송 사업은 오리무중이다. 현재 한국통신과 데이콤 자회사인 DSM이 대립하는 양상. 한국통신은 공기업이 통신.방송을 장악한다는 약점이 있고, 데이콤이 LG에 인수될 경우 LG 또한 방송.통신을 포괄하는 거대기업이 변해 한국통신과 유사한 독점적 지위를 누리게 된다.

해서 그랜드 컨소시엄 구성은 치밀하게 진행돼야 한다. 위성방송 사업자의 지분문제는 물론 채널사용자.프로그램 공급자.수신기 제조업체 등의 참여를 진작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당국의 지나친 개입은 곤란하다. 위성방송은 시장원리를 따르는 상업방송이기 때문. 당국은 효율성을 보장하는 가이드라인만 설정하고 민간기업의 자율적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다만 단일화한 위성방송 사업자의 독점에 따른 부작용, 예컨대 프로그램 공급자에 대한 일방적 우위관계 등을 예방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현재 투자의욕이 급격히 떨어진 외자유치도 과제다. 그들의 선진 노하우와 경영기법 등의 도입이 사업 초기 위성방송 활성화에 필수적이다.

숙명여대 박천일 교수 (정보방송학) 는 "자국 방송사와 외국 방송사에 동등한 지위를 부여한 싱가포르처럼 외국자본의 투자를 끌어내는 정책적 전략이 시급하다" 고 말했다.

그러나 역시 성패의 관건은 소프트웨어 개발과 가입자 관리 등의 마케팅 능력. 지상파나 케이블과 확연하게 다른 '식단' 으로 시청자를 끌어들이지 못하면 결코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초보적 개발단계에 그친 CAS (시청자에게 보고 싶은 프로를 제공하고 요금을 부과) 시스템의 표준화, 일반인에겐 아직 부담스런 위성수신기 (셋탑박스.현재 50만원 정도) 가격인하, 시청자들의 다양한 구미를 고루 만족시켜주는 채널 구성 등등.결국 돈은 시청자 주머니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밖에 현재 실험운영 중인 KBS.EBS 위성방송 처리문제, 지상파 방송의 위성전송 문제, 케이블방송과 관계정립 등 풀어야 할 숙제는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 상용방송이 늦어지더라도 철저한 준비가 없으면 더 큰 화를 부르게 된다.

케이블과 제휴실패와 고가의 수신기로 엄청난 손실을 기록한 독일의 DF1, 양대 회사의 대결로 외국 프로그램 제작사에 실익을 넘겨준 프랑스 위성방송, 과도한 투자로 출발 초기에 휘청거렸던 영국의 BskyB 등의 선례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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