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소보 가다] 세르비아 군경 철수 저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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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프리슈티나 (코소보) =배명복 특파원]코소보 전쟁 종식 나흘째인 13일. 주도 프리슈티나로 통하는 길목마다 철수하는 세르비아군과 진주하는 영국군이 서로 교차하며 자욱한 먼지를 내뿜었다.

양쪽 모두 소 닭보듯 말없이 지나치지만 영국군의 의기양양한 모습과 세르비아군의 무거운 발걸음이 극히 대조를 이뤘다.

공식인구 20만명. 하지만 현재 몇 명이 남아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프리슈티나. 시내는 철수하는 세르비아군의 울분.허탈과 나토군의 경계심, 불안에 싸인 세르비아계 주민, 환호하는 알바니아계 주민들이 온통 뒤섞여 기대와 불안.냉소가 혼재하는 어지러운 분위기였다.

"탕 - 탕탕 - ." 오후 프리슈티나 시내 중심가에서 갑자기 연쇄적으로 총성이 울렸다.

군인들의 발걸음이 부산해지며 도시는 순식간에 긴장으로 휩싸였다.

시내를 순찰 중이던 영국 공수부대원들에게 한 세르비아 경찰이 권총을 꺼내 휘두르며 발사한 것. 영국 공수부대원들은 즉각 대응사격했다.

세르비아 경찰은 그 자리에서 숨졌다.

충돌 후 프리슈티나는 시민들이 다시 거리를 활보하는 등 혼란 속에도 평온을 되찾았다.

그러나 코소보 곳곳에선 나토군 및 코소보해방군 (KLA) 과 철수 중인 세르비아 군.경간 충돌이 이어졌다.

프리슈티나에서 남쪽으로 약 40㎞ 떨어진 스티믈례 부근에서는 독일 슈테른지 기자 등 독일 취재기자 2명이 세르비아 민병대가 쏜 총에 맞아 숨졌다.

독일군과 함께 이 마을로 들어간 기자들은 알바니아계 주민을 집단매장했다는 공동묘지를 취재하러 가던 중 갑자기 맞닥뜨린 세르비아 민병대가 쏜 총에 맞았다.

코소보 남부 제2의 도시 프리즈렌에서도 진주하는 독일군과 철수하는 세르비아계간 충돌이 발생했다.

알바니아계 주민들이 철수 중인 세르비아 군인들에게 달려들어 폭행하자 세르비아군은 이들에게 위협사격을 가했다.

이를 지켜보던 독일군이 세르비아쪽에 총을 발사, 양측간에 짧은 교전이 발생했고 세르비아군 3명이 현장에서 숨졌다.

한때 이곳 남쪽 도로에서는 갑자기 자동화기 소리가 귓전을 때렸으며 곧이어 불길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마을 사람들은 가옥 두 채가 불에 탔다고 말했다.

세르비아 군경은 철수 전 알바니아계 가옥들에 불을 지르고 도로 곳곳에 방해물을 설치, 나토군의 진주를 지연시키기도 했다.

코소보평화유지군 (KFOR) 사령부가 설치된 프리슈티나 거리에는 아직 철수하지 않은 세르비아군과 경찰, 산에서 내려온 KLA 병사들이 '해방군' 으로 진주한 나토군과 뒤섞여 있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한 세르비아계 경찰 간부는 "내 고향이 이곳이고 가족이 이곳에 있지만 나토와의 협정에 따라 15일까지는 세르비아로 철수해야 한다" 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빈 집이 많긴 해도 프리슈티나 시내는 그런대로 도시의 모습을 갖춘 느낌이었다.

다만 프리슈티나에서 가장 높은 17층짜리 몬테네그로 은행 빌딩은 나토군의 폭격으로 유리창이 모두 박살났다.

바로 옆에 있는 5층 규모의 중앙우체국 건물은 더욱 참담하게 부서졌다.

불에 타고 철골골조가 드러난 흉한 몰골을 하고 있다.

알바니아계 주민들은 이날도 영국군 전차가 지나갈 때마다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지른다.

'나토 웰컴 코소보' 라고 적힌 피켓을 흔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차에 빨간 장미꽃을 달아주는 소녀들도 있다.

그러나 세르비아계 드라간 보그다노비치 (30.광산기사) 는 거리를 질주하는 영국군 전차와 병사들에게 냉담한 시선을 던졌다.

"나토가 출신을 불문하고 코소보 전 주민에 대한 치안을 책임지겠다고 하는데 그게 과연 가능할까. " 그가 우려하는 건 무장해제 위기에 처한 알바니아계 코소보해방군 (KLA) 들의 허탈감이 나토의 통제에도 불구하고 세르비아계 주민들에 대한 보복테러로 이어질 가능성이다.

실제 이날 새벽엔 KLA가 세르비아계를 공격, 군인과 경찰 등 4명이 숨지기도 했다.

어제까지 공격자였던 나토가 오늘은 보호자로 입장이 바뀐 상태에서 과연 무슨 방법으로 세르비아인들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코소보에서 세르비아로 이주를 고려하고 있는 세르비아계 주민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이들의 '역 (逆) 난민' 현상은 코소보의 끝나지 않은 비극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13일 저녁 10여대의 트랙터에 가재도구를 잔뜩 싣고 프리슈티나 시내로 들어오는 수십명의 사람들을 발견하고 난민 신세가 됐다 전쟁이 끝나면서 귀향하는 알바니아계 주민들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세르비아계 주민들이었다.

사흘 전 마을에 나타나 총을 쏘며 위협하는 KLA 병사들 때문에 황급히 살던 집을 버리고 온 '새로운 난민' 들이라는 것이 이들을 인솔해 프리슈티나로 온 브랑카 베젤리노비치 (28) 의 설명이었다.

"그래도 세르비아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프리슈티나가 안전하다고 판단, 무작정 이곳으로 왔다" 는 그녀는 "이제 우리를 돌볼 사람은 아무도 없다" 며 눈물을 흘렸다.

13일 하룻동안 코소보에는 영국군 4천3백명, 프랑스군 2천8백명, 독일군 2천5백명, 미군 2천1백명 등 약 1만4천명이 진주했다.

영국군은 코소보 주도 프리슈티나에서 대열을 정비했으며 프랑스군은 남부 그니라네에 도착했고 독일군 선발대는 프리즈렌에 일단 머물면서 진군을 준비 중이다.

30대의 탱크와 기갑차량으로 구성된 미군 본진도 이날 마케도니아 국경 블라체를 통해 코소보로 진입했다.

나토 소식통들은 세르비아군의 철수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으며 모든 지대공 미사일이 코소보를 빠져나갔다고 전했다.

이날 저녁까지 유고 연방 병력 8천~1만명이 철수했으며 협정에 따라 14일까지 프리슈티나 북부를 포함하는 '1구역' 까지 퇴각한다.

18일까지는 2구역으로 설정된 코소보 중부에서, 20일에는 북부지역에서도 완전히 물러날 예정이다.

코소보 난민의 평화적 귀환을 위해 진격한 나토군과 또다시 난민으로 고향을 떠나는 세르비아계 주민, 마지막까지 방화를 일삼던 세르비아군과 이에 보복하는 KLA…. 코소보가 증오와 보복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평화와 화해의 땅으로 다시 태어날 날이 과연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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