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왜 북에 끌려다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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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한 전투함이 서해상 북방한계선 (NLL) 남쪽 수역을 1주일째 휘저으며 돌아다니고 있다.

우리 고속정이 북한 경비정을 들이받고, 더 많은 북한 전투함이 침투해오고, 이에 전군에 경계강화 지시가 내려지는 등 서해 5도 주변만 들여다보면 신경이 곧추선다.

하지만 정부 고위 관계자들을 바라보노라면 별로 걱정할 상황도 아닌 듯하다.

단호한 대응 운운하지만 긴장감이 별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병정놀이' 를 하는 것도 아니고. 도무지 뭐가 뭔지 모를 지경이다.

한가지 분명해진 것은 질질 끌려가는 듯한 사태가 거듭되다 서해상의 NLL이 남북간 군사적 현안으로 변질된 것이다.

이런 어이없는 상황은 NLL을 무력화시키려는 북한의 억지논리와 정치적 계산 탓이지만 우리 정부와 군의 대응에도 적지 않은 문제점이 있는 게 분명하다.

이번 사태는 지난 5일 북한 어선들이 NLL 부근에서 꽃게잡이 조업에 나서며 시작됐다.

북한 중앙방송은 6일 "남측 전투함이 영해를 침범했다" 는 생트집을 늘어놓았고 7일부터 경비정들이 NLL을 넘어왔다.

하지만 우리 해군의 초동 대응은 아주 소극적이었다.

7일 오후 "북한 경비정 3척이 영해 침범을 했나" 라는 질문에 합참측은 "그런 사실이 없다" 고 잡아뗐다.

우리 해군은 당시 3척의 고속정을 동원, '통상적인' 경계활동만을 펼쳤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매년 되풀이된 북한 어선들의 꽃게잡이쯤으로 판단했다는 얘기다.

실제인지 여부는 확실치 않지만 어쨌든 이 때문에 이날의 긴급상황은 국방부 위기대책반장에게 보고조차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에도 'NLL 침범이 아닌 월선' 이라는 모호한 표현을 하고, 말해선 안될 완충구역을 공개하면서 "완충구역에선 발포하지 않는다" 고 대응방향까지 밝혔다.

단계 단계에서 뒤로 빼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니 북한이 주춤하기는커녕 개의조차 안한 게 아닌가 싶다.

과잉대응도 문제지만 햇볕정책으로 더위를 먹어 치밀한 경계태세와 대응을 소홀히 하지 않았는지 군은 스스로를 점검할 때다.

정부도 물론 사태를 돌이켜봐야 한다.

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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