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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찾은 코소보] 인공청소… 난민… 상처뿐인 전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발칸반도의 포연 (砲煙) 이 78일만에 걷혔다.

유고군이 철수하는 대신 국제평화유지군이 진주함으로써 코소보에 마침내 평화의 햇살이 비치게 됐다.

하지만 전쟁이 남긴 상흔과 증오가 워낙 깊어 쉽게 치유되지 않을 전망이다.

유고를 파괴하는 데 막대한 전비를 쏟아부은 서방은 이를 다시 복구하는 무거운 짐을 또다시 지게 됐다.

특히 알바니아계 - 세르비아계의 반목은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됐다. 벌써 코소보내 세르비아계들은 고향을 등지기 시작했다.

◇ 나토

나토는 '코소보 알바니아계 주민 보호' 라는 정치적 목적 달성에는 일단 성공했다.

나토는 코소보와 접경한 세르비아 남서부에 폭 25㎞의 완충지대를 설치, 코소보내 유고 군.경찰의 '완전철군' 을 이끌어냈다.

공습 이전 랑부예 평화협상에서 유고측에 제시했던 것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이다.

하지만 나토는 막강한 무력에도 불구하고 단호한 모습을 보여주는 데 실패하는 등 많은 허점을 노출했다.

특히 지상군 파병을 두고 우유부단한 모습과 상호이견을 계속 노출함으로써 보다 빨리 협상을 타결하거나 전쟁을 끝낼 기회를 놓쳤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향후 유럽의 지역문제에 대해 미국의 지나친 간섭을 배제하고 유럽국가들이 주도해 해결해야 한다는 자각이 유럽의 회원국들 사이에 나온 것도 이번 사태가 남긴 유산이기도 하다.

나토는 또 유엔 안보리 결의를 거쳐 코소보에 평화유지군을 파병하는 데 동의함으로써 나토라 할지라도 유엔을 무시하고 단독으로 국제안보를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뼈아픈 교훈도 얻었다.

◇ 유고

철군협정 타결소식이 전해지자 유고시민 상당수는 삼삼오오 모여 환호했다. 지긋지긋한 나토공습이 끝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소식에 코소보에 주둔중이던 유고군 병사 토도르 (30) 는 울분을 터뜨렸다. 그는 "무엇 때문에 싸웠단 말인가. 그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려 얻은 게 과연 무엇인가. 전쟁의 결과 오히려 코소보에서 세르비아인들은 살 수 없게 된 것이 아닌가" 라고 분개했다.

그러나 유고인에게 이번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감당키 어려울 정도였다.

나토의 무차별 공습으로 온 국토가 쑥대밭이 됐다. 국가 기간시설이 초토화돼 경제는 20년 이상 후퇴했다. 발칸반도의 최강자라는 위치에서도 물러나게 됐다.

반면 얻은 것은 하나도 없다. 공습전 랑부예 평화협정에 서명했을 경우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유고군은 코소보에서 6개월 이내에 철수하면 됐다.

또 국경경비를 위해 2천5백명 가량의 병력이 남아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철군 협정에 따라 유고군은 11일 이내에 전면 철수해야 한다. 국경경비 병력도 5백명 수준으로 제한됐다.

평화유지군의 구성도 러시아 병력 1만명이 참여하나 유고가 가장 강력하게 반대한 나토군 주도로 이뤄지게 됐다.

유고는 개전 즉시 인종청소에 나섬으로써 단기적인 목적은 달성하는 듯했으나 도덕적 측면에서 국제사회의 지지를 획득하는 데는 실패했다.

게다가 알바니아계 난민 귀환에 따른 보복 우려로 코소보내 세르비아계 주민들의 불만을 사게 됐다.

밀로셰비치 대통령도 패전으로 인한 정치적 입지의 약화와 전범이라는 달갑지 않은 과실만 얻게 됐다.

◇ 난민

나토의 유고공습 이후 대량으로 발생한 코소보 난민문제는 이번 전쟁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됐다.

나토의 공습 이후 코소보의 1백80만 알바니아계 주민 중 1백만명이 고향에서 쫓겨나 난민신세가 됐다.

유고군이 지난해 봄부터 코소보해방군 (KLA) 소탕작전에 들어간 이후 민간인 학살사건이 발생하는 등 코소보에 긴장이 감돌자 공습 직전까지 10만명이 개별적으로 코소보를 탈출했다.

하지만 공습 시작 이후 발생한 대량난민은 거의 전적으로 유고병력에 의한 조직적인 '인종청소' 라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청소당한 난민들이 마케도니아.알바니아 등으로 몰려들면서 사태는 주변국으로 확산되는 조짐을 보이기도 했고 이들이 폭로한 학살.강간.추방의 참극은 국제사회의 동정여론과 지원을 불러일으켰다.

코소보 사태의 궁극적인 해결은 이들 난민들이 전원 무사히 귀향해 전쟁으로 파괴된 고향을 재건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울러 알바니아계 귀향난민들이 코소보에 살고 있는 20여만명의 세르비아계 주민과 공존할 수 있느냐도 관심사다.

자칫 난민들의 세르비아계에 대한 역차별과 보복으로 새로운 분쟁의 불씨가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채인택.이훈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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