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김영남 방중 성과와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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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북한의 김영남 (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일행은 지난 6월 3일에서 7일까지 중국을 방문해 장쩌민 (江澤民).리펑 (李鵬).주룽지 (朱鎔基) 등의 중국 고위 인사들과 면담하고, 상하이 (上海) 를 비롯한 주요 지방을 시찰했다.

이번 방문은 향후 동북아질서 재편, 북한의 내부 변화, 남북한 관계개선과 관련해 여러가지로 주목을 끌고 있다.

우선 이번 김영남 일행의 방중 (訪中) 을 계기로 혈맹관계 복원을 꾀하는 양측의 의지를 감안할 때 중국이 유고주재 중국대사관 폭격 이후 악화된 중.미관계를 고려해 북한에 대해 반미노선을 요구할 것인가.

현재 중국은 지구적 문제와 지역적 문제를 분리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태도로 볼 때 중국은 지구적 문제에서 미국과 패권적 딜레마에 빠져 있다 하더라도 지역적 문제로 간주할 수 있는 동북아에서의 안정을 위해 북한의 대미.대일관계개선을 계속 지지할 것이다.

또한 김정일 (金正日) 이 명실상부한 최고 지도자로 부상한 이후 북한은 중국이 요구하는 조.중관계 복원에 냉담한 태도를 보였지만 이번 방문으로 양국간의 신뢰구축을 위한 노력을 추진할 것이다.

중국은 올해 식량 15만t과 코크스 40만t을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영남 위원장의 방중에 대한 답방으로 리펑 상임위원장이 북한측의 중국 국가대표단의 방북초청을 수락하면서, 양측은 전통적인 우호협력관계를 가일층 발전시키기로 합의했다.

올해 10월 6일에 수교 50주년 기념행사가 예정돼 있는 만큼 향후 양국관계 복원은 긍정적으로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그 다음, 심각한 경제난 타개를 고민하고 있는 북한 지도부가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계기로 중국형의 대외개방정책을 적극 추진하려고 할 것인가.

김일성 (金日成) 사망 이후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한 김영남 일행이 개방도시 상하이를 방문하면서도 양푸 특구 등을 시찰하지 않았으며 대표단에 경제전문가가 전혀 없었다는 점에서 북한이 중국식의 대외개방노선을 따를 것으로 낙관하기는 어렵다.

중국의 괄목할 만한 경제발전을 찬양하는 북한이지만, 조선은 '조선식' 을 고수한다는 입장을 당분간 유지할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은 중국의 경제번영을 가져온 대외개방의 부정적 측면에 주목하면서,점진적인 발전전략을 세우고 김정일 체제를 지속시키는 것에 더 관심을 쏟고 있다.

이에 따라 양측은 각자의 방식대로 사회주의 건설노선을 추구하는 것을 상호간에 지지하면서 중국측은 북한이 석탄.강철.농업 등 주요 경제분야의 발전에 기울이는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예상되는 북.중 관계개선은 동북아질서 재편과 관련해 한반도에 어떠한 함의 (含意) 를 지니는가.

1970년대 관계정상화 이후 중국과 미국은 중대한 문제에 부닥칠 때마다 소원과 화해를 되풀이해오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대결구도는 21세기에 들어서도 유일 초강대국을 지향하는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며, 특히 동북아에서의 안보상황은 적어도 중국의 묵시적 동의가 없이는 순조롭게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상호 경제문제로 밀접하게 연계돼 있는 양국 입장에서 보면 소원관계가 지속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

중국과 북한은 국제체제의 다극화와 합리적인 신국제정치.경제질서를 수립하려는 노력에 동참하고, 미국 주도아래 이뤄진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 의 군사행동강행과 중국대사관 폭격에 대한 비난에서도 보조를 맞출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미.중관계의 악화에 대해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그들의 체제유지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보다 신중한 태도를 견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북.중간의 관계복원에 지나치게 긴장할 필요가 없다.

미국과 일본의 신안보지침과 한.미.일 공조에 대해 중국은 러시아와 북한을 포용하는 대응전략을 취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동북아에서 탈냉전 분위기를 거슬러 새로운 완전대결구도를 형성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국이 북한에 대해 영향력을 복원하는 것이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에 긍정적 역할을 할 것이다.

송인해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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