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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 과학자가 발견한 DNA지문의 혁명(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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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독감으로 알려진 신종 플루의 모습

DNA 이야기를 조그만 더 하자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로부터 시작해 이후 수많은 과학자들이 다양한 종(種)들이 후손에게 자기의 특질을 어떻게 물려 주는지에 대해 수많은 이론을 세웠다. 과학자들이 그러나 생식이 1개의 정자와 1개의 난자가 수정이 돼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1875년의 일이다.

DNA과학의 역사는 불과 50년

현대 유전학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멘델은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형질이 어떻게 유전되는지를 규명하는 이른바 '멘델의 유전법칙'을 1865년에 발표했다. 그는 오늘날 유전자로 불리는 '분리 요소'를 밝혀냈다. 이런 유전자들은 절반은 모계에서, 나머지 절반은 부계에서 유래되며, 서로 뒤섞이지 않는다.

1859년 찰스 다윈은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자연의 선택과정을 거친 결과물이며, 모든 생명체들은 '단순한 단세포 형태에서 진화되었다'는 이론을 전개했다.

1869년 스위스의 젊은 화학자 미셔(Fredrich Miescher)는 폐기된 붕대에 남아 있는, 흔히 고름으로 알려진 배출물을 검사하면서 DNA를 발견했다. 그는 이 물질을 ‘뉴클레인(nuclein)’이라고 불렀다.

이로부터 약 1세기 뒤에 과학자들은 그 물질이 바로 DNA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참 지난 1953년 왓슨(James Watson)과 크릭(Francis Crick)이 DNA의 이중 나선형구조를 찾아내면서 생명의 비밀연구가 시작됐다. 대단히 빠른 속도로 발전한 지금의 생명과학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된 것은 50년에 불과하다.

인간 게놈의 비밀 서서히 풀려

유전자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수도사였던 멘델에서 시작됐다.

인간 게놈(유전자) 지도작성에 따라 밝혀진 흥미로운 결과 가운데 하나는 인간의 유전자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적은 숫자인 겨우 3만1천 개 정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이것 못지않게 놀라운 사실은 인간이 지구상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DNA의 99.9%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 게놈에 들어 있는 무려 32억 개의 글자 배열 가운데 0.1%인 겨우 300만 개만이 다른 사람과 다를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0.1%가 쌍둥이를 제외하고는 지구상에서 동일한 DNA를 갖는 사람은 절대 존재할 수 없게 만들고 인종 간의 차이, 서로 다른 외모, 질병에 대한 면역력을 비롯해 무수히 많은 특질을 만들어내는 데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 유전자의 99.1%는 침팬지의 유전자와 동일하다. 인간과 쥐는 약 75%가 동일하다.

미국의 무죄 프로젝트(Innocence Project)도 DNA지문에서 나왔다. 미국의 유명한 O.J. 심슨 사건의 변호사 팀에 참여했던 뉴펠(Peter Neupel)과 쉑크(Barry Scheck)라는 두 명의 변호사가 설립했다.

사형선고 받은 12명 무죄로 풀려

청소년기 남자 가운데 조직폭력집단에 가입하거나 흉기를 휘두르는 성향이 강한 것은 부분적으로 선천적인 ‘전사 유전자’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1993년 이후 범죄혐의를 받고 있던 재소자 가운데 144명 이상이 원래 공판 때는 사용할 수 없었던 새로운 DNA 기술을 활용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들 가운데 12명은 그들이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 때문에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수 감방에서 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DNA기술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사람들이었다. 이와 같은 성공은 광범위한 인권운동을 촉발시켜 현재 미국의 25개 유명 법과대학이 결백 규명 프로젝트를 교과과목으로 채택하고 있다.

“우리의 통찰력이 적용된 가장 만족스러운 사례는 알렉 제프리 박사가 발견한 DNA 지문이다. 이는 사형수 감방에 갇힌 사람들이 혐의를 벗도록 해준다. 말 그대로 생명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제임스 왓슨, DNA 이중나선구조의 공동 발견자

암을 비롯해 유전질환 치료 가능성 열어

이제 DNA 과학은 IT에 이어 제4의 물결이다. 엄청난 시장과 함께 우리에게 가장 가깝게 다가올 과학기술이다.

우선 의료 및 진단에서 질병을 단지 치료하는 단계에서 이를 사전에 방지하는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고 그러한 예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앞서 설명했듯이 범죄수사학에서 유전자 감식은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미국 내에서만 살인혐의로 기소됐던 사람들 가운데서 무려 144명 이상이 무죄로 입증돼 풀려났다. 노화방지와 암 연구에도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인간을 만드는 방법을 곧 손에 쥐게 될 순간에 도달해 있다” 2002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설스턴(John Sulston) 박사의 말이다.

DNA과학의 발전으로 ‘영원한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까지만 해도 운동과 음식섭취에 신경을 쓰는 것 외에는 노화과정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이 공통된 과학적 믿음이었다. 하지만 DNA에 기초한 수단과 전략으로 무장을 하게 됨에 따라 이 같은 믿음에 도전하는 과학자들이 점점 늘고 있다.

노화, DNA과학으로 풀 수 있어

이제 수많은 유전학자들이 앞으로 수십 년 안에 인간의 평균 수명을 120~130세 정도로 늘릴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노화의 비밀은 세포에 있다는 것이 풀렸고, 노화세포를 줄이거나 없애면 사람이 장수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낙관적인 미래 뒷면에는 수년 안에 사회가 안게 될 온갖 문제들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앞으로 건강할 수 있는 사람만을 채용하기 위해서 고용주가 유전자 검사를 이용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그리고 보험회사가 보험 가입자들에게 보험가입 전에 반드시 유전자 검사를 받을 것을 요구하거나 비밀리에 그 정보를 입수한다면 어떻게 될까?

부모가 유전자 식별을 실시하고, 혹시 엄마나 아빠의 DNA 때문에 유전적 질환이 생길 가능성이 있는 아이를 사전에 낙태시킨다면 윤리와 도덕과 관련 어떤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들이다.

어쨌든 인간의 비밀이 모두 담겨 있는 유전자 지문이 공개될 때 사회적으로 불러일으킬 문제들은 너무나 많다.

사랑하는 연인이 알코올 중독과 폭력유전자를 갖고 있다면?

우리들의 정보가 담겨 있는 주민등록번호가 아마도 완전히 공개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렇다면 아무리 비밀을 지키려고 한들 그 정보 또한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어느 날 우리는 충격적인 제보에 접할 수도 있다. “그 동안 당신과 행복하고 달콤했던 시간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이제 당신과 헤어져야만 하는 나의 심정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는 이별의 편지다.

이런 쇼킹한 제보도 받게 될 것이다. “귀하가 가입한 보험은 당사의 부득이한 사정으로 계약을 체결할 수 없으니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당신의 DNA정보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랑하고 한시도 떨어져서는 살 수 없다고 생각했던 당신의 연인이 알코올 중독 유전자나 폭력과 살인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DNA검사가 나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또 단명(短命)할 유전자를 갖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점쟁이를 찾아가 듣는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김형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