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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집없는 어미 고양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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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지난해 가을께 도둑고양이가 우리 집 주위를 돌아다녔습니다. 골치 아픈 쥐라도 쫓아 줄까 해 밥을 조금 놓아 뒀습니다. 한동안 살짝살짝 먹고 가더니 몇 주 지나자 얼굴도 보여 주고, 제 발로 들어와 야옹야옹 밥을 달라 했습니다.

올 초에 둘째아이를 가져 내 배가 남산만 했을 때 고양이도 몸이 둔하고 무거워 보였습니다. 측은한 마음이 들어 생선가시가 없는 날엔 멸치 대가리라도 얹어 줬습니다. 출산하고 산후조리가 끝날 즈음, 고양이도 배가 홀쭉한 모습으로 돌아다녔습니다. 어디서 몸을 풀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처럼 새끼들에게 젖 먹일 것을 생각하고 밥을 조금씩 더 놓아 줬습니다.

그리고 햇빛 좋은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어미가 마당 한가운데서 바짝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습니다. 궁금해 지켜봤더니 마당 구석에 주먹만한 새끼 네 마리가 놀고 있었습니다. 종이상자를 모아두는 곳에 다 해져 쓰지 않는 보온덮개 쪼가리를 던져 뒀는데 그 속에서 새끼를 낳은 모양이었습니다. 젖 주느라 핼쑥해진 어미가 밥 주는 사람에게도 날카로운 눈길을 던지는 걸 보고 마음이 짠했습니다.

사나흘 뒤 품꾼을 사서 마늘작업을 하던 날이었습니다. 10명 남짓 되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며 일을 하는 통에 그만 다 들키고 말았습니다. 한 마리 가져가고 싶다며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잡아보려고 보금자리 앞에서 서성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좀 염려됐지만 그래도 별일 있으랴 싶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역시나 고양이 가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어차피 도둑고양이라 가둬놓고 기를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새끼 한 마리쯤 길들이려고 했기에 서운했습니다. 아니 서운함을 넘어 배신감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먹여 주고 정을 줬는데 이렇게 떠날 수 있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어미가 이사한 곳은 다름 아닌 노인회장댁. 새끼고양이가 생겼다고 좋아하는 노인회장님 앞에서 차마 우리 고양이라고 우길 수 없었습니다. 노인회장님도 그동안 밥을 먹여 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갈 수 있느냐? 매일 밥을 주는데 새끼 한 마리라도 갖다 놔야 할 것 아니냐? 밥만 먹고 가면 내가 서운하다'.

이사하고서도 여전히 밥을 먹으러 오는 어미에게 알아듣든 말든 그렇게 속내를 내비쳤습니다. 그러자 며칠 뒤 뒤뜰에 두더지 한 마리가 죽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며칠 뒤 집 앞 고추밭에 쥐 한 마리가 죽어 있었습니다. 새끼를 주는 대신 어미 고양이가 표시한 성의였습니다.

노인회장댁 아주머니가 우리 집에서도 밥을 줬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한 마리를 갖고 왔습니다. 어미가 없을 때 그물로 덮쳐 붙잡았다고 합니다. 잘됐구나 싶었는데 다음날 소동이 또 벌어졌습니다. 새끼를 뺏긴 어미가 나머지 새끼를 데리고 어디론가 다시 떠나버린 것입니다. 괜한 선심에 손해 봤다고 아주머니가 생각할까봐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다행히 뺏긴 새끼가 우리 집에 있는 것을 알고 나서 고양이 가족은 노인회장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모든 것이 평온해졌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바라던 대로 새끼 한 마리를 키우게 됐고 어미는 여전히 노인회장댁과 우리 집을 오가며 밥을 먹고 있습니다.

도둑고양이에게 웬 밥이냐고 탓할지 모르지만 내 마음이 그쪽으로 흐릅니다. 어미고양이를 바라보며, 사람이나 짐승이나 새끼들 먹여 살리고 키우려는 마음이 어떠한 것인지 헤아릴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미운 정 고운 정도 쌓였나 봅니다. 저녁나절 어미와 새끼가 밥 달라고 이중창으로 울어대도 그 소리가 밉게 들리지 않습니다.

노인회장댁 아주머니는 남은 새끼를 조만간 여기저기 나눠줄 작정이라고 귀띔했습니다. 읍내 어디쯤 아는 사람 집에도 보낸다고 했는데, 생이별할 어미 고양이 마음이 어떨지 걱정이 앞섭니다.

추둘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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