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쁨] 경기도 성남시 조영제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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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우리 부부는 각자의 일 때문에 아직 같이 살지 못하고 떨어져 살고 있다.

그녀는 몇몇의 언니와 자취하고 있는데 그날따라 웬일인지 평소 같지 않게 괜한 심술과 투정을 부렸다.

일이 끝나고 무슨 일인가 싶어 부랴부랴 자취방을 찾았다.

언제나처럼 그 곳에 사는 영숙.선영.화용씨 등은 밝은 미소로 날 맞는다.

그 속에 다소 침울한 듯 앉아 있는 나의 사랑.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걱정이 앞서지만 반갑게 맞아주는 그녀의 언니들을 외면할 수 없어 어울리는 도중 오늘이 돌아가신 장인어른의 기일이라고 하는 영숙씨의 말에 난 화들짝 놀라버렸다.

언젠가 아내가 그랬다.

제삿날만 되면 아버지가 그렇게도 보고싶다고. 난 까맣게 잊고 만 것이다.

총각시절 우리 결혼하면 장인.장모 제사는 꼭 챙기자고 떠들어댔던 나 자신, 그러나 사정상 떨어져 산다고 기일마저 까맣게 잊은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해졌다.

미안해 쩔쩔매는데 영숙씨가 조용히 다가와 "사실은 저희들이 미흡하나마 제사 준비를 했거든요" 하는 것이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돈다.

일부러 놀라게 해 주려고 숨기고 있다고 하며 자신들이 상 차릴 동안 아내의 기분도 풀어줄 겸 근처 공원에 갔다오라고 한다, 그렇게 우린 공원에서 잠깐 있다가 들어왔지만 그녀의 우울을 풀어줄 순 없었다.

집안으로 들어오는 우릴 작은 방으로 인도한다.

그리고 그 속에 차려진 풍성하지는 않지만 정성껏 차려진 작은 제사상 앞에 그녀는 못내 감춰두었던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정성 가득한 제사상에 술 한잔 바치는 내 손길은 떨리고 있었고 피 한 방울 나눈 적 없는 그녀들의 가족애에 가슴 벅찬 감동을 억누를 길 없어 끝내는 슬픔의 한 자락을 토해내고 말았다.

경기도 성남시 조영제씨

◇ 협찬 = ㈜한국문화진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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