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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세근 특파원의 인도네시아 총선 르포 1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자카르타 = 진세근 특파원] 인도네시아가 몸살을 앓고 있다. 민주주의로 새로 태어나기 위한 진통이다.

44년만의 자유총선거 투표일을 4일 앞둔 3일. 수도 자카르타는 거대한 혼돈의 덩어리다.

1년전 그 살벌했던 폭동과 소요의 도시였던 자카르타는 북소리와 유세의 함성, 자동차 경적 소리로 덮여 있다.

3일은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의 딸인 메가와티 수카르노 푸트리가 이끄는 인니투쟁민주당 (PDIP) 의 마지막 선거 유세 날. 도시 전체가 붉은색과 흑소의 물결이다.

붉은색은 PDIP의 상징색이고 흑소는 '힘' 의 상징. 수만명의 지지자들이 몰려나와 자카르타의 중심가를 관통하는 8개 거리는 발디딜 틈이 없다.

트럭.버스.삼륜차.오토바이.택시 등 온갖 종류의 차에 올라타 북을 치고 노래를 부르는 지지자들. 가족단위로 몰려나와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깃발을 흔들고 있다.

메가와티가 수하르토 일가의 부정과 이를 비호하는 하비비 정권을 비판할 때마다 군중들은 환호한다.

투표일은 7일이나 공식 선거운동은 4일로 마감된다.

정당과 후보들은 한표라도 더 확보하려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이슬람 정당은 흰색, 공화당은 오렌지색, 국민수권당은 청색. 48개 정당마다 나름대로의 상징색을 갖고 있다.

각당의 지지자들은 그 당의 상징색 옷을 입고 같은 색 깃발을 펄럭이며 춤추며 노래하고 소리친다.

원색 물결의 거대 잔치판이다. 아직 자카르타에는 교통혼잡말고는 큰 불상사가 없다. 겉으로는 선거축제가 만발한 모습이다. 그러나 아슬아슬하다. 밑바탕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2일 분리와 독립요구가 나오는 북단 아체지방에서는 군인 2명이 무참하게 살해됐다. 분리주의자의 습격 탓이다. 아체에서는 지난달 이후 59명이 숨졌다.

족자카르타.서칼리만탄 등 전통적으로 독립세와 야당세가 강한 지역에서는 예외없이 폭력과 충돌이 터져나오고 있다.

하비비 대통령은 3일 긴급각의를 통해 경찰과 군인에게 질서유지를 지시했다.

문제는 또 있다. 선거부정이다. 개표후 엄청난 후유증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선거위원회 루디니 위원장과 로스만하디 경찰국장은 3일 기자회견에서 "여러 곳에서 벌써부터 선거투표용지가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고 밝혔다.

폭로와 회유.협박도 끊이지 않고 있다. 남 술라웨시주 주도 우중판당에서는 1일 인도네시아 국부 수카르노의 딸인 메가와티 지지파와 반대파 사이에 여성대통령에 대한 찬반을 놓고 투석전까지 벌어져 보안군이 출동했다.

분명 1억3천여만 인도네시아 유권자들은 흥분한 모습이다. 그럴만도 하다.

그동안 여섯번의 선거가 있었으나 하나마나한 선거였다. 집권다수당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불평등 선거였기 때문이다.

난립한 정당들이 똑같은 조건에서 선거를 치르기는 사실상 처음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그간의 목마름을 한꺼번에 풀겠다는듯 정당과 후보, 그리고 유권자들까지 과격하다싶을 정도로 자신의 주장들을 목청 높여 토해내고 있다.

불안한 축제, 그래도 인도네시아는 거듭나고 있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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