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오르는 위성방송시대] 상. 전파빅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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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21세기 한국방송의 초석을 다질 통합방송법이 이달 중 국회에 통과할 예정이다. 여당은 야당과 협의해 이달 안에 새 방송법을 상정하겠다는 뜻을 밝힌바 있다.

지난 5년여 질질 끌어온 방송법개정에 종지부가 찍힐지…. 특히 그동안 관계법이 없어 계속 표류하던 위성방송의 정상궤도 진입이 관심을 끌고 있다. 위성방송의 현황과 과제를 3회 시리즈로 살펴본다.

◇ 한반도 상공 위성전쟁터

회사원 김모씨는 며칠 전 서울 신림동 여관촌에서 낯뜨거운 경험을 했다. TV를 켜니 일본 포르노 위성방송이 나오지 않는가. 입에 담기 힘든 장면이 계속됐다. 알고 보니 숙박업자가 암암리에 일본 위성방송을 수신하는 장비를 갖춰놓은 것이었다.

업계에선 이처럼 일본 위성방송을 비밀스럽게 설치해 시청하는 규모가 수천 가구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통계적으론 전국 1천만 가구가 외국 위성방송에 노출된 상태다. 현행법으로 금지된 중계유선 (7백만).케이블방송 (1백만) 의 재송신과 직접 안테나를 설치 (1백70만) 해 시청하는 가구의 총계다.

연초 여론조사기관 KRC리서치 분석에서도 전체가구의 절반 가량이 외국 위성방송을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외국방송이 우리 일상 가운데로 파고든 셈이다.

뿐만 아니다. 지금 한반도 상공에는 5백50여개의 위성방송 전파가 흘러다니고 있으며 이중 3백여 채널은 지름 1.5m의 안테나로 볼 수 있다. 아직 외국 위성방송을 일일이 찾아 보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알게 모르게 우리 하늘이 외국전파의 경합무대로 돌변한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숫자가 아니라 우리 문화의 침식이다. 우리가 관계법 미비로 주춤하는 사이 외국에선 한국을 겨냥한 위성방송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일본 프로야구 이종범 경기를 중계하는 OSB가 대표적 경우. 일본에서 전파를 쏘아보내고 있다. OSB는 지난달 초 일본 드라마를 한글자막으로 처리해 방영키로 했다가 반대여론에 밀려 철회하는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이밖에도 3~4개의 외국방송이 한국을 향해 전파를 쏘거나 쏠 준비를 갖춘 상태. 이들은 일단 외국에서 전파를 발사하고 향후 관계법이 정비되면 방송사업자 허가를 취득한다는 구상이다.

특히 이들은 홈쇼핑 안내를 곁들여 국내에서 080 전화서비스를 통해 수익을 올리고 있다.

반면 현재 국내 위성방송은 걸음마 수준. KBS와 EBS가 각각 2개씩의 채널, 그리고 케이블 방송대학TV가 1개채널을 운용하고 있다. 또한 한국홍보가 주요 목적인 아리랑TV는 7일 시험방송을 거쳐 8월부터 본격서비스에 나설 계획이다.

위성방송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다매체.다채널 시대의 앞자리에 서 있기 때문. 지상파.케이블 방송이 각각 신문.월간지라면 위성방송은 전문잡지로 비교된다.

그래서 외국은 첨단 디지털 압축기술로 수많은 채널을 개설하며 이른바 '전파빅뱅'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예컨대 음악채널만 해도 컨트리.소울.재즈.뉴에이지.라틴.랩.록 등으로 잘게 쪼개지는 양상이다. 94년 6월 세계 최초로 디지털 위성방송을 시작한 미국 DirecTV는 1백70여 채널을, 96년말 출발한 일본 SkyPerfecTV는 1백여 채널을, 위성방송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히는 영국 BskyB는 2백여 채널을 운용하고 있다.

물론 위성방송은 유료방송이다. 시청자가 본 만큼 돈을 내는 방송이다. 또한 일설처럼 황금알을 낳는 장밋빛 산업도 아니다. 서비스 초기에는 막대한 비용을 치러야 한다.

그러나 95년부터 위성을 잇달아 올려놓고 각종 이해관계로 법을 정하지 못해 3천억원 가까이 날려보낸 우리 현주소를 감안하면 위성방송의 정상화가 시급한 시점이다.

연세대 최양수 교수 (신문방송학) 는 "외국방송의 탈법수신.재전송은 외국프로 밀수입과 마찬가지" 라며 "현재의 파행적 모습은 빨리 정리돼야 한다" 고 강조한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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