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선 12번 쬔 암 3기 환자 “종양 크기 3분의 1 줄었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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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두암 환자인 조지 타이씨가 13번째 방사선치료(토모테라피)를 받기 위해 자세를 취하고 있다.

한국에서 컴퓨터 자동화 부품회사를 운영하는 조지 타이(59)씨가 몸에 이상을 감지한 건 2년 전이다. 목 뒤로 뭔가가 넘어가고 압박감도 느껴졌다. 또 왼쪽 귀도 막히는 듯하면서 청력도 떨어졌다. 한동안 바쁜 일과 탓에 병원 방문을 미루다 올 6월에 세브란스병원을 방문했다. 곧바로 정밀검사를 받았고 비인두(鼻咽頭)에 4㎝X3.5㎝X3㎝ 크기의 암 덩어리가 발견됐다. 주변 림프절 두 곳에서도 암세포가 확인돼 비인두암 3기 진단이 내려졌다. 비인두는 코 뒤에서 인두(입과 식도 사이)에 있는 조직이라 수술로 암을 제거하기는 힘든 위치다. 이 경우 방사선 치료가 제격이다. 타이씨는 곧 방사선 종양학과 금기창 교수에게 의뢰됐다.

주변 조직 손상 우려, 수술하기는 어려워

2 치료 전 금기창 교수가 조지 타이씨에게 뇌 촬영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3 치료를 받고 있는 조지 타이씨의 모습이 치료실 화면에 보이고 있다.

금 교수는 PET(양전자 단층촬영)·CT(컴퓨터 촬영)·MRI(자기공명영상촬영) 결과를 가지고 치료 계획을 세웠다.

타이씨처럼 얼굴에 생긴 암을 방사선으로 치료하기 위해선 치아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방사선 치료를 받고 나면 암 주변 부위에 위치한 침샘과 혈관이 손상돼 충치가 잘 생깁니다. 또 만일 발치라도 하게 되면 회복도 힘들어요.“ (금 교수)

타이씨 역시 8월 초까지 발치를 비롯한 치아 치료를 받았다. 이후 금 교수는 토모테라피(Tomotherapy) 치료를 권했다.

“방사선 치료의 목표는 암세포를 죽이면서 주변 조직에 대한 손상을 최소한 줄이는 데 있습니다. 비인두는 주변에 침샘이나 뇌간(腦幹) 같은 중요한 장기가 있어요. 따라서 주변 조직을 최대한 보존하는 토모테라피가 좋습니다.”(금 교수)

문제는 이 치료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비싸다는 것이다. 타이씨는 가족과 의논한 뒤 금 교수의 조언대로 토모테라피를 받기로 결정했다. 금 교수는 6990cGy(센티 그레이)의 방사선을 6주 반 동안 33회에 나눠 조사하기로 치료 계획을 세웠다. 타이씨의 암 진행 단계는 3기다. 따라서 원격 전이를 예방하기 위해 항암 치료를 병행했다.

항암치료도 병행 … “생존 가능성 80%”

방사선 치료는 8월 28일부터 시작됐다. 기자는 9월 15일 오후 2시 타이씨가 13번째 방사선 치료를 받는 과정을 함께했다.

치료 시작 전 금 교수가 타이씨와 면담하면서 불편한 점은 없는지 묻는다.

“입안이 약간씩 헐면서 따끔거리고 메슥거릴 때가 있지만 참을 만해요. 방사선 치료 때문이 아니라 병행 중인 항암제 때문인 것 같네요. 그런데 치료 결과는 당연히 좋겠죠?”(타이씨)

“비인두암은 한국에도 흔하고 그간 시행한 토모테라피 치료 결과도 좋습니다. 현재 3기까지 진행된 상태지만 생존 가능성이 80%는 됩니다.”(금 교수)

“지금까지 12번 치료를 받았는데 암세포는 얼마나 치료됐나요?”(타이씨)

“현재로선 3분의 1쯤 줄었어요. 치료가 끝나면 암 덩어리는 다 없어질 겁니다.”(금 교수)

상담이 끝나고 2시15분 치료실로 들어온 타이씨. 익숙한 태도로 머리에 철사로 엮어진 커다란 망사 모양의 모자를 쓰고 마우스피스도 장착한 뒤 눕는다.

타이씨는 기자에게 “이런 기구를 착용하는 것은 치료 도중에 내가 움직여 방사선이 목표 지점 이외에 조사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며 친절하게 설명한다.

환자의 위치가 고정되자 치료가 시작됐다. 오늘은 총 치료량의 33분의 1, 즉 210cGy 만큼의 방사선이 10분간 조사될 예정이다.

“삐, 삐, 삐, 삐…” 가는 기계음과 함께 10분간 방사선이 조사됐다.

2시30분, 치료가 끝났고 모자와 마우스피스를 제거한 타이씨가 치료실 밖으로 나왔다.

“치료 과정이 고통스럽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아주 편안한 상태에서 치료를 받았다. 솔직히 말하면 치료 도중에 살짝 졸았다. 지금 정도라면 얼마든지 치료를 받을 만하다”며 웃는다. 10월 14까지 타이씨는 오늘 진행한 치료를 매주 다섯 번씩 받게 될 것이다.

글=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사진=신인섭 기자



토모테라피는
방사선 강도 조절, 360도 방향서 암세포 집중공격

암을 방사선으로 파괴시켜 없애는 방사선 치료는 CT와 MRI가 도입되면서 획기적인 발전을 하게 됐다. 암의 위치와 크기를 정확하게 알게 되면서 방사선을 최대한 암세포에만 집중 공략하는 일이 가능해 졌기 때문이다.

특히 컴퓨터의 발달로 방사선 조사량을 정밀하게 계산함으로써 1990년대부터는 3차원으로 방사선 치료가 가능해졌다.

이전까지만 해도 전후·좌우 네 방향에서만 방사선을 조사했지만(1세대) 3차원 입체 조형치료가 도입된 이후 여러 방향에서 집중적으로 종양에 방사선을 조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2세대). 이후 방사선 치료를 받은 비인강암이나 전립선암 환자의 생존율이 증가했다.

하지만 이 치료법 역시 문제는 남는다. 정상조직과 암세포를 구분하는 일은 가능해 졌지만, 방사선 조사량의 강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하기는 어려워 암세포 주변의 정상조직이 손상되는 것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비인강암 치료를 받다 보면 침샘이 파괴되는 것을 예방하기가 힘들다.

21세기에 도입된 토모테라피는 이런 단점을 극복한 3세대 방사선 치료법에 해당한다. 정상세포의 손상을 막기 위해 MLC라는 보호막을 장치하고 방사선을 360도 방향에서 강도를 조절하면서 조사하는 치료하기 때문이다. 암 세포는 목표대로 파괴시키면서 주변의 정상조직은 최대한 보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도입 역사가 짧고 장비가 고가인데다 의료보험도 적용이 안 된다. 실제 치료비만 2000만~3000만원이나 된다.

따라서 주변에 중요한 장기가 없는 암세포는 아직도 3차원 입체 조형치료가 일반적인 치료법으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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