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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영욱의 경제세상

정운찬 총리 후보자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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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오늘은 선생님이라 부르겠습니다. 학창 시절 수업을 들었던 저에게는 이 호칭이 익숙해서입니다. 선생님의 변신을 ‘변절’이라 생각하는 제자들도 있습니다. 사랑을 많이 받은 제자일수록 그런 것 같습니다. 충격적이라는 제자들은 훨씬 더 많습니다. 신문에 글을 쓰는 것조차 학자가 할 일이 아니라고 했던, 예전의 선생님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나라를 위해 잘된 일이라 생각합니다. 사회 통합을 이뤄낼 적임자로 선생님만 한 분도 없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건 나라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어찌된 영문인지 나라야 망하든 말든, 내 편 아닌 정부는 넘어뜨리고 말겠다는 패거리 정신만 남아 있습니다. 이런 망국적인 이념 대립을 해소하는 데 큰 역할을 하시리라 기대합니다.

그렇다고 걱정이 없는 건 아닙니다. 선생님 소신과 이 정부 철학이 너무 달라서입니다. 선생님은 케인지언입니다. 케인스는 자본주의를 살리기 위해선 비자본주의적 방법도 불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케인지언은 시장보다는 정부를 더 신뢰하고 정부의 시장 개입을 적극 옹호합니다. 감세와 규제 완화를 주창하는 이 정부와는 정반대입니다. 선생님은 연초에 했던 강연에서도 이 정부 정책 중 가장 우려되는 게 규제 완화라고 했습니다. 경제운용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또 선생님은 대표적인 금산분리론자입니다. 산업자본이 은행을 소유해선 안 된다며 이 정부의 금산분리 완화정책을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재벌그룹에도 비판적이었습니다. 재벌을 길들여야 나라가 산다며, 강력한 재벌 개혁을 주창했습니다. 하지만 이 정부는 출자규제를 폐지했습니다. 뉴딜정책도 그렇습니다. 선생님은 대공황 시기의 미국 뉴딜은 노동자 권익보호와 사회안전망 확대가 핵심 내용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정부의 뉴딜에는 토목 건설만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런 괴리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선생님도 고민이 많을 것입니다. 청문회에서도 이 점이 많이 지적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소신을 바꾸지 않으면서도 나라에 도움될 일이라 생각합니다. 청문회를 통과하면 이것부터 먼저 해주시리라 기대합니다.

우선 이 정부에 합리적 사고방식이 깊이 뿌리내리도록 해 주십시오.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려는 경향이 부쩍 늘어난 것 같습니다. 4대 강 사업이 대표적입니다. 추진이 잘못됐다는 게 아닙니다. 방식이 문제입니다. 예비타당성 조사를 생략하고 환경영향평가를 졸속으로 하는 건 논외로 하겠습니다. 최근에는 사업비 중 3분의 1이 넘는 돈(8조원)을 공기업인 수자원공사에 부담시켰습니다. 몽땅 예산으로 하려니 다른 사업비를 줄여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건 명백히 편법입니다. 공기업 부채도 나랏빚이라는 건 모두 아는 일입니다. 공기업 적자도 나중에는 혈세로 메워야 하고, 다음 세대에 두고두고 짐이 됩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이라며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이를 중지시키려면 비용 대비 효과를 확실히 따지는 것입니다. 예산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된다면 편법을 강구할 게 아니라 사업 속도를 조절해야 합니다. 국가채무 통계를 발표할 때 공기업 부채까지 포함한 수치도 같이 내놓기를 당부드립니다.

저소득층에게 돈을 빌려주겠다는 미소(美少)금융도 그렇습니다. 친서민 취지에 누가 반대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중요한 일이라면 정부 예산으로 해야 합니다. 기업과 은행더러 돈 내놓으라고 해서 시작해선 안 됩니다. 기업을 봉으로 생각하는 구태가 재연된 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서민을 위한다며 물가 규제를 하는 구태도 사라져야 합니다. 제품 원가를 공개하고 생필품의 가격을 중점 관리하겠다는 건 하지하책(下之下策)입니다.

이런저런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내일부터 시작되는 청문회를 통과하는 게 급선무입니다. 제가 아는 선생님이라면 큰 문제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진짜 고민은 그 이후부터입니다. 부디 ‘성공한 총리’가 되길 기원합니다. 그래야 변절 비난에서도 자유로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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