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냉키, 위기에 과감히 대응 … 금융 공황서 빨리 빠져나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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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냉키 잘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루커스(72·사진)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 교수가 지난해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본격화된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미국 연방준비은행이 취했던 공격적인 대응 조치를 높이 평가했다.

루커스 교수는 18일 서울대 경제학부와 금융경제연구원 초청으로 서울대 법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현재 미국의 불경기’라는 주제의 특별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대공황 당시 연준은 소비와 생산의 급격한 감소를 넋 놓고 바라보고만 있었지만, 지난해는 금융시스템의 ‘마지막 보루(a last resort)’로서 과감한 행동을 취해 예상보다 빨리 금융 공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루커스 교수는 정부의 시장 개입을 꺼리는 시카고학파의 거두다. 시카고학파는 정부가 시장에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극히 미미하다고 본다.

경제 주체들이 가능한 한 모든 정보를 활용해 미래에 대한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적으로 조정한다는 이른바 ‘합리적 기대가설’의 설명처럼 정부 정책은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충분하지 않은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정부 개입의 필요성을 주창했던 케인스학파와는 상반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의 위기 대응을 칭찬한 루커스 교수는 자유주의 경제학자답게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에 대해선 날선 비판을 했다. “그(he)에게 돈을 걷어서 그녀(her)에게 돈을 주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느냐. 그 효과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어왔지만 아무도 제대로 알 수 없다.”

행사를 주관한 서울대 경제학부 이지순 교수는 버냉키에 대한 루커스 교수의 호평을 언급하며 “시카고학파가 무조건 시장 개입에 반대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대표적인 오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도 중앙은행이 충분하게 돈을 풀지 않은 탓에 대공황이 왔다고 주장했다”고 덧붙였다.

강연을 마친 뒤 루커스 교수와 부인 낸시 스토키 시카고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부 대학원생·대학생들과 마주 앉았다. 학생들은 “합리적 기대이론을 비정규직 문제에 적용하면 어떻게 되나” “경제이론과 실제 현실 간의 괴리를 어떻게 해결하나” 등 다채로운 질문을 던졌고, 노학자 부부는 질문에 성심껏 답했다.

“왜 경제학은 점점 수학으로 변해가야 하느냐”고 묻는 질문에 루커스 교수는 “난 (수학 공식만 쓰는 게 아니라) 글도 잘 쓴다”고 답했다.

그는 “수학은 경제 현실을 이해하는 데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면서도 “좋은 수학자가 반드시 좋은 경제학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경제위기 때마다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거품(bubble)’이란 표현에도 부정적이었다. 거품이란 적정 가격보다 높다는 뜻인데, 적정 가격을 선험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뜻이다.

서경호 기자

◆로버트 루커스=1937년 생으로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1964)를 받았고, 카네기멜런대를 거쳐 76년부터 시카고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70년 이후 거시경제학 연구에 큰 영향을 준 경제학자로 꼽힌다. 자유주의 경제학의 대가인 밀턴 프리드먼(76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의 수제자로 95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경제 주체들이 가능한 한 모든 정보를 활용해 미래에 대한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적으로 조정한다는 ‘합리적 기대가설’로 유명한 인물이다. 정부가 정책 변화를 통해 개인이나 기업 등 민간 경제 주체들에 영향을 주려고 하지만 정부 정책 변화에 대해 개인이나 기업들이 새롭게 행동을 바꾸기 때문에 결국 정부 정책이 장기적으로는 무력해진다는 내용이다. 세율 인하가 경제를 지속적으로 성장시킨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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