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창한 원시림속 들꽃의 향연-점봉산 진동계곡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4면

오월의 따스한 햇살이 숲속 가득히 퍼진다. 소나무.참나무.이깔나무.층층나무.굴참나무가 들어선 숲속에는 노란색의 돼지똥풀.미나리냉이.미나리아재비.졸방제비, 흰색의 참꽃말이.꽃말이, 파란색의 벌깨덩굴 등 늦봄에 피는 들꽃들이 오솔길을 따라 무리지어 있다.

숲속으로 실려오는 개울물 소리와 이름 모를 새들의 청아한 지저귐이 신록의 푸르름을 더해준다. 맑은 개울물에서 떼지어 노니는 열목어는 이곳이 '청정지역 1번지' 임을 실감케 한다.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생태 기행의 메카' 진동계곡은 국내에서 생태계가 가장 잘 보존된 지역이다. 국내 4천여종의 식물중 20%인 8백여종이 서식하고 있어 봄꽃이 피는 5월초순부터 식물학자를 비롯해 사진작가.답사단체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 20일 녹색연합 생태보전부 서재철부장은 현대백화점 문화센터 생태 기행회원 30여명과 이곳을 찾았다.

"이 풀은 조선시대 임금이 귀양간 사람에게 내리는 사약의 원료나 한약재로 사용되는 천남성입니다. 이 박새는 10년전만 해도 찾아보기 힘들었어요. 사람들이 산나물을 채취해가면서 남은 빈자리에 뿌리를 내렸지요. "

참가자 대부분이 40대 후반인 주부. 발길을 돌리면 꽃이름을 쉽게 잊지만 들꽃을 설명하는 순간만큼은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진지하게 귀를 기울인다.

이날 생태기행에는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식물학을 전공하는 김민하 (25) 씨와 진동계곡 지킴이중 한 사람인 홍순경 (47) 씨가 강사로 동참했다. 홍씨는 이곳에 들어온지 올해로 9년째.

"결혼하면서 진동계곡에 거처를 마련했을 당시만 해도 '이곳은 개발과 거리가 멀어 사람의 때가 묻지 않은 원시림 그대로 보존될 것' 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양수댐을 건설한다며 최근 마구잡이로 산을 허무는 바람에 하루가 다르게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어요. " 라며 홍씨는 울분을 토한다.

특히 진동계곡 원시림은 '극상림 (생태적으로 가장 안정된 상태를 취하고 있는 삼림)' 으로 남한 최고의 생태계 박물관인데다 계곡 오솔길에는 철마다 들꽃이 다투어 피기때문에 홍씨의 아쉬움은 더하기만 하다.

점봉산은 현재 자연 휴식년제로 출입이 금지돼 있지만 같은 점봉산 기슭이라도 진동계곡은 국립공원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출입이 자유롭다. 그러다 보니 산나물 뜯는 철이 되면 전국에서 전문 채취꾼은 물론 도시민들이 관광버스를 타고 몰려들어 산림자원을 훼손시키고 있다.

지난해에는 하루 20~30대의 버스가 몰려와 산을 망쳐놓기도 했다. 이때문에 올해부터 산림청에서는 등산이나 산나물이나 약초채취를 목적으로 이곳을 찾는 일반인들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생태기행에 참가한 서혜성 (서울은평구 대조동) 씨는 "한달에 한번이지만 야외에 나와 자연을 접하다 보면 우리 산하의 아름다움을 몸으로 느끼면서 동시에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고 말한다.

진동리는 백두대간 점봉산 줄기의 곰배령.단목령.북암령이 만나 이뤄진 분지. 진동계곡의 한갈래인 강선계곡 초입부터 곰배령까지는 완만한 오솔길로 이어져 있다. 천천히 걸어도 왕복 4~5시간이면 충분하기 때문에 자녀들과 함께 가보는 생태여행지로 손색이 없다. 홍순경씨 (0365 - 461 - 9508)에게 문의하면 안내해 준다.

김세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