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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통 큰 자세로 화해시대 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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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탈북자들의 '기획 입국'으로 남북관계에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15차 남북 장관급회담도 무기한 연기됐다. 문제의 근원은 북한 스스로에 있지만 해결 과정에 대해 북한은 불만스러운 모양이다. 그렇다고 탈북자 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손 놓고 구경만 해서도 안될 일이다. 탈북자들이 제3국에서 표류생활을 하고 있는데 모른 척해서야 되겠는가.

근원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북한 스스로 생활고로 인한 탈북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살기 좋고 풍요로운 사회를 건설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북한은 주민들이 '이민'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정상' 국가가 돼야 할 것이다. 지구상에 합법적인 이민이 불가능한 국가가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다행히도 아테네에서는 남북이 하나가 돼 개회식 공동 입장에 상대방 응원까지 하는 좋은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과거의 북한과 달라진 긍정적인 면이 아닌가 평가하고 싶다. 다시 말해 탈북자 문제 처리에 대해서는 불만을 표시하고 있지만 남북관계를 역행하지는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모습은 북한의 대외관계에서도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올 초 일본이 대북 제재법안을 만들 때만 해도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 별렀지만 결국 고이즈미 정권이 원하는 대로 납치자 가족을 모두 돌려보냈다. 또한 미국과 철저히 대립하면서도 꾸준히 외교적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모습은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고, 어떤 형태로든 정상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는 의지를 엿보이게 한다.

그러나 아직 이 정도의 노력으로는 부족하다. 이유를 불문하고 핵문제를 협상카드로 이용하는 것은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일이다. 또한 장성급 회담을 통해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기로 약속했으면서도 북방한계선(NLL)을 자꾸 넘나들고 있다. 이유를 따져본다면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북한은 어떠한 경우에도 허심탄회한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 지금의 북한처럼 상대국에만 책임을 돌릴 일이 아닌 것 같다.

북한 스스로 자신이 없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것은 전 세계가 알고 북한이 인정하는 일이다. 그리고 김정일 국방위원장 이후 시대가 어떻게 될지 자신이 없는 것 같다. 더욱이 주변국가들에 대해서도 신뢰하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게 사실이라면 북한과의 대화는 '뫼비우스 띠'를 도는 행위와 다를 게 없다. 몇 바퀴 돌았는가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어떠한 국가도 북한과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열지 못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꾸준히 남북관계를 개선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북한은 같은 민족이기 때문이다. '싫든 좋든' 내색도 하지 못하고 같은 민족이기에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 한가족끼리 사소한 문제에 시비를 해서야 어떻게 같이 생활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여타 국가와 다른 우리 정부의 고민거리일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는 것을 김정일 위원장이 아는지 모르겠다.

남북관계는 통일이라는 '보일 듯 말듯 한'희망을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분단 60년을 놓고 볼 때 최근 10여년은 남북관계의 중흥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한국의 대북 화해협력 정책이 영원히 지속될지는 미지수라는 점이다.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말아야 한다.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화해협력의 시대'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탈북자들의 '기획 입국' 사건을 놓고 불만스러워할 것이 아니라 좀더 '통 큰'자세를 보여야 한다.

진희관 동국대 북한학연구소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