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무기여 잘있거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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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 브라질 호나우두(앞쪽)가 아이티 수비수의 태클을 피해 드리블하고 있다. 뒤에 보이는 'PEACE(평화)'라는 문구가 경기의 성격을 잘 말해주고 있다.[포르토프랭스 AP=연합]

아직도 무장세력이 수도 한복판을 활보할 정도로 정정(政情)이 불안한 카리브해의 작은 섬 나라 아이티에 브라질 축구대표팀이 찾아왔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정한 A매치 데이인 18일 아이티 대표팀과의 경기를 갖기 위해서였다. 브라질 축구팀을 인솔한 사람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실바 대통령.

브라질 대표팀과의 경기를 보기 위해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실비오 카토르 축구경기장은 전국에서 모여든 1만5000여 팬이 관중석을 꽉 메웠다. 경기는 호나우디뉴의 해트트릭에 힘입어 브라질이 6-0으로 이겼다. 하지만 경기 결과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티는 지난 2월 말 새 임시정부가 들어섰지만 아직도 내전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평화유지 업무를 맡았던 미국이 내전 종식에 실패한 뒤 지난달부터 브라질이 이 업무를 이어받았다. 이달 초 룰라 대통령은 아이티에 파격적인 제안을 한다. "무기와 축구 입장권을 교환하자. "

축구를 통해 어느 정도 무장해제를 해보겠다는 의도였다. 아이티는 브라질이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우승할 당시 이틀간 공휴일을 선포할 정도로 온 국민이 브라질 축구에 흠뻑 빠져 있다. 룰라의 작전은 일단 성공적이었다. 많은 사람이 총기를 반납하고 입장권을 받아 경기를 관전했다.

이날 경기 후 브라질 룰라 대통령은 "아이티인이야말로 진정 멋있는 골을 넣었다"며 아이티인들을 치켜세웠고, 이에 제라드 라토투 아이티 총리는 "(브라질과의 경기가) 아이티인들이 받은 위대한 선물"이라고 화답했다.

한편 브라질-아이티전 외에도 전 세계적으로 A매치 38경기가 이날 치러졌다. 프랑스는 지네딘 지단.마르셀 데사이.비센티 리자라쥐 등 1990년대 중반부터 10년간 프랑스 축구를 정상으로 이끌었던 세대들이 대표팀 은퇴 뒤 보스니아와 첫 경기를 했다. 결과는 1-1. 레이몬 도메니시 신임 감독은 "경기력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축구에 대한 이해가 젊은 선수들에게 조금 부족할 뿐"이라고 말했다. 프랑스는 신예 페기 루인둘라의 골에 위안을 삼아야 했다.

이날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2004 유럽선수권대회(유로 2004) 준결승전 상대인 그리스-체코의 경기였다. 체코는 설욕을 별렀지만 그리스와 0-0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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