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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거짓말'과 '살신성인' 차이도 모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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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원이 당의장 자리를 물러났다. 어떤 이유가 됐건 인간적으로는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그의 퇴임 회견은 사태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이다. 대표적인 것이 부친의 친일의혹 보도에 '허위사실' '명예훼손'이라고 반박한 일이다. 신 의원이 거짓말한 것이 아니라면 부친이 친일한 사실이 없어야 한다. 당연히 물러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진실은 다르다. 일본군에 자원해 헌병을 지냈고, 항일운동가들을 고문까지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 부분은 신 의원 말대로 검증이 필요하다고 치자. 그의 부친은 일본군 입대를 독려하는 글까지 쓴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월간지의 글에는 '내선일체가 되는 데 가장 먼저 할 것은 지원병이 되는 길입니다. 참으로 황국신민이 될 생각이 있거든 훈련소로 오시요'라고 적혀 있다.

이쯤 되면 신 의원의 주장에 대해 반박할 가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논란은 계속되고 파문은 커지고 있다. 여권은 이번 사태의 교훈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자신들만이 '민주개혁평화세력'이라고 주장하며 과거 청산 작업을 가속화할 자세다.

신 의원은 신 의원대로 무슨 억울한 희생양이라도 되는 듯 행동하고 있다. 사과가 이벤트라도 되는지 광복회를 찾아가서는 사과의 수용을 강요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열린우리당 당직자들은 그의 거짓말은 애써 외면하면서 '살신성인'이라는 등 있지도 않은 연좌제 때문에 그가 물러나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신 의원은 지금이라도 이성을 찾아야 한다. 신 의원은 "앞으로 친일반민족 행위의 진상과 과거사의 진실을 밝히는 데 맹렬한 기세로 전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신 의원에게 이 일은 선친의 잘못을 캐는 작업이 된다. 자신의 일은 덮고 남의 과거만 뒤지겠다면 누가 받아들이겠는가. 그는 이미 한차례 "독립투사의 자손으로 태어났으면 훨씬 자랑스러웠을 것"이라고 말해 인륜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