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해외건설 수주 벌써 40억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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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콘크리트 쏟아붓기는 이제 그만. 살아남기를 원한다면 종합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라. " 세계적인 건설전문지 'ENR' 는 지난해 '세계 2백25대 건설회사' 에 대한 특집에서 앞으로의 건설시장은 단순 시공능력보다 파이낸싱.엔지니어링.개발기획 등 종합적인 능력이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며 이렇게 지적했다.

올들어 해외건설수주가 지난해에 비해 빠르게 늘면서 침체된 건설업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벌써 지난해 실적을 사실상 넘어섰고 이대로 가면 1백억달러도 가능할 것으로 점쳐진다.

문제는 내용. 아직은 설계.감리 등 고부가가치 분야는 거의 선진국에 넘겨주고 토목.건축 등 기초적인 분야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것. 한 업계 전문가는 "아직은 단순공사가 주종" 이라면서 "한국 건설업계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엔지니어링 등에서 기술력을 높여야 한다" 고 지적했다.

◇ 빠르게 늘어나는 해외건설 수주 = 20일 현재 해외건설협회가 집계한 해외건설 수주실적은 37억5천만달러. 불과 5개월여만에 지난해 실적 (40억5천만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SK건설이 최근 아랍에미리트에서 수주한 6천만달러짜리 공사 등 협회에 아직 신고되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이미 지난해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해건협은 전망하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현 추세대로 가면 연초 목표 80억달러를 훨씬 웃돌아 1백억달러까지 가능할 것으로 본다" 고 전망했다.

물론 97년 실적이 1백40억달러였던 것에 비하면 아직은 멀었지만 지난해 워낙 사정이 어려웠던 점을 감안하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게 협회 분석이다.

◇ 문제는 내용 = 지금까지 수주된 45건 가운데 토목 17건.건축 13건 등 비교적 단순공사로 취급되는 부분이 66%를 차지하고 있다.

발전소.정유공장 등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분야는 10건에 불과하고 그나마 감리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업계에서는 선진국 수준을 1백으로 기준할 때 한국업체의 ▶시공능력은 80~90%에 이르지만 ▶엔지니어링은 30~40% ▶최근 중시되는 금융동원능력은 20~30%에 불과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ENR의 98년 세계 2백25대 건설사중 10위권 내에 한국 업체는 하나도 없었으며 현대건설이 12위, 동아건설이 36위를 기록하며 50위권 내에서도 단 두군데뿐이었다.

세계 건설시장은 2000년 3천5백억달러, 2005년 5천억달러로 급신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업체들은 현재 노동집약적 프로젝트에서는 개도국의 추격을, 고부가가치 첨단 분야에서는 선진국의 경쟁상대가 못되는 상황이라 향후 2~3년내에 단순공사 수주는 거의 불가능한 상태가 될 것이란 어두운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 무엇을 해야 하나 = 해건협 김대영 회장은 "해외건설 시장은 변하는데 우리 기업의 구조조정은 미흡하다" 며 "이제는 단순 시공보다 플랜트 분야 등 고부가가치 분야에 집중해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궁극적으로는 벡텔 등 선진업체와 같이 개발.기획.설계 능력을 동시에 갖춘 개발자가 돼야 할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특히 한국은 중화학 분야의 기반이 튼튼하므로 이를 건설부문과 연결하면 플랜트 분야에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건설산업연구원 김민형 박사는 "프로젝트의 수익성을 가지고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사업의 타당성을 분석하는 능력이 필수적인데 한국 업체들은 이 부분이 취약하다" 고 말했다.

외국사와 컨소시엄을 구성할 때 한국업체는 시공, 선진 외국사는 기획.설계.파이낸싱 부분을 담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외국업체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데,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

SK건설의 김재명 전무는 "해외건설 영업에 대한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진흥기금 등 각종 금융지원을 확대하는 등 정부지원이 필요하다" 고 말했다.

건설교통부 신동춘 과장은 "최근 중남미와 중앙아시아 등에 정부 차원의 시장조사단을 파견, 주요 프로젝트에 대한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고 설명했다.

염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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