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날' 참뜻 새기는 책들…어떤걸 읽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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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빈손으로 왔습니다. " "아래에다 내려 놓아라. "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데 무얼 내려놓으라 하십니까?" "그럼 가지고 가거라. " 절대 자유를 위한 전제조건이 되는 무소유의 삶을 강조한 불교 조계종 종정 혜암선사의 선문답이다.

빈손만으로 충분치 않아 빈손이라는 생각조차 버려야 한다는 선사의 가르침. 중앙일보 이은윤 종교전문위원이 한국 선불교를 대표하는 10명의 선사들과의 선문답을 모은 '큰 바위 짊어지고 어디들 가시는가' (중앙M&B.8천원) 는 선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이를 통해 현대 물질문명의 한계를 넘어 21세기가 필요로 하는 창의성.직관력 그리고 발상의 전환에 녹녹한 자양분을 공급할 만한 선 (禪) 의 향연에 흠뻑 빠져볼 기회다.

22일은 불기2543년 부처님 오신 날. 올해도 그 절기를 맞아 부처의 가르침을 새기고 생활 속에서 선의 향기를 즐길 수 있는 책들이 속속 출간돼 관심을 끈다.

선사들의 선문답 모음집을 비롯, 국문학자의 수상록이나 부처의 전기, 달라이 라마의 불교인생론 등이 그것. 특히 스님들이 직접 쓴 에세이들도 넉넉히 출간돼 각박한 시절 마음을 달래기에도 적합하다.

선문답이 선사들의 가르침을 얘기한다면 고려대 인권환 (국문학) 교수가 펴낸 '꽃피고 물흐른다' (나남출판.9천원) 는 생활 속에서 선을 찾는 불교수상록이다.

불교문학에 오랫동안 천착해 온 학자와 불교와의 만남 속에서 배어나는 참회와 반성을 적고 있는 이 글들은 온전한 불자가 되고 싶어하는 학자의 소망이 한시 (漢詩).불시 (佛詩) 등과 적절히 어울어져 흐트러진 마음을 가다듬기에 충분하다.

스님들이 직접 써서 더 정겨운 책들도 있다.

청계사 주지 석지명스님이 그 동안 써온 칼럼과 수필을 모아 펴낸 '똥속의 과일줍기' (예담출판.7천5백원) 는 '살아간다' 기 보다 소모하는 현대인에게 공해덩어리 도시를 극락으로 바꾸는 지혜를 들려준다.

특히 불교의 무 (無) 사상과 생활철학을 삶 속의 구체적인 비유를 들어 맑은 필치로 그려내 눈길을 끈다.

스킨 스쿠버를 하고 스키를 타고 그림을 그리는 '개구쟁이' 수안스님이 낸 그림에세이 '참좋다 정말 좋구나' (늘푸른소나무.8천5백원) 는 슬프고 아름답고 때론 재미있는 그의 인생이야기를 담았다.

강아지와 뒹굴다가 부처님 앞에 공양드리는 순진한 마음으로 써 낸 담박한 문체와 소박한 그림이 맞물려 빚어내는 상승효과 또한 만만찮다.

이밖에 평화와 비폭력의 사신으로 존경받는 14대 달라이 라마 텐진 갸초의 불교인생론을 담은 책 '티베트 성자와 보낸 3일' (제프리 홉킨스 편역.심재룡 옮김.솔.1만원) 과 프랑스 철학자인 장 프랑수아 르벨이 분자생물학 박사로 파스퇴르 연구소에 근무하다 티베트 불교에 귀의한 아들과 나눈 대화를 수록한 대담집 '승려와 철학자' (이용철 옮김.창작시대.1만2천원) 는 불교 원리를 이해하고 깊은 맛을 알아가는데 도움을 주는 만큼 부처님이 오신 신록의 계절에 음미할 만하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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