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영화판, 징하요 (4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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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44) '춘향뎐' 촬영

지난 3일 나는 '춘향뎐' 의 제작발표회를 전북 남원에서 가졌다.

남원시가 관광지로 개발한 춘향골 안의 승월정 (昇月亭) 이란 정자에서다.

봄비가 마른 대지를 적시며 온종일 내려 마치 '춘향뎐' 의 출발을 경축하는 듯했다.

물론 이날 행사에 참석한 취재 기자들이나 손님들은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궂은 날씨를 마다않고 남원까지 와서 '춘향뎐' 의 출발을 축하해준 여러분들이 한없이 고마웠다.

사실 나는 인사말에서도 이런 점을 상기시키며 마음을 다 잡았다.

"좋은 작품으로 만들어 우리 고전문학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겠습니다. " 정말로 나는 그러고 싶다.

문을 두드렸다 번번히 실패하고 있는 칸영화제에 나가 당당히 우리 영화의 진면목을 보여주고도 싶고, 이를 통해 우리 민족 정서의 가치를 드날리고 싶다.

열심히 찍어 '서편제' 의 신화를 계속 이어갈 수만 있다면, 하는 생각이다.

여러분의 음덕 덕분인지 '춘향뎐' 의 초반 출발은 순조롭다.

MBC미술센터에서 세운 남원골 오픈세트는 거의 실물에 가깝게 재현됐다.

오래된 티를 내기 위해 제작진은 남원 일대의 빈집 등을 돌며 문짝 등 가재도구들을 구해왔고 돌담의 이끼 하나까지도 세심한 신경을 썼다.

남원시에서 사다 심어준 노송 한 그루의 값이 1억원이 넘는다고 하니 그 정성은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그동안 '장군의 아들' 시리즈 등 숱한 영화를 찍으면서 나만큼 세트를 많이 지었다 허물었다 한 감독도 없을 것이다.

그랬어도 이번 '춘향뎐' 의 오픈세트야말로 내가 한 것중에 가장 정교한 작업이다.

한번은 우리 집사람이 세트장에 들렀다가 그 현장에서 "오픈세트장이 어디냐" 고 물었을 정도니 제작진이 추구하는 리얼리티의 우수성은 칭찬할 만하다.

춘향집 외에 6채로 구성된 춘향마을과 옥사 등이 오픈세트로 지어졌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춘향영화는 대부분 카메라가 춘향집이면 집, 옥사면 옥사로 바로 들어갔다.

때문에 그 현장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보여줘야할 취락이나 길목, 주변 분위기를 전혀 알 수 없었다.

나는 이런 과정까지도 조상현의 판소리 사설에 실어 리얼하게 보여줄 것이다.

특히 옥사는 고증을 새롭게 했는 데, 원형의 돌담안에 옥이 위치하고 동헌과도 멀리 떨어져 있는 식으로 그려진다.

나는 '춘향뎐' 을 준비하면서 80여편의 춘향전 이본을 수집, 샅샅히 훑어보고 그중에서 좋은 것들을 취했다.

춘향전의 계절적 배경도 이본마다 각기 다를만큼 다양한 형태로 전해 내려온 것을 보고 나도 놀랐다.

조상현의 판소리에도 계절감이 헷갈릴 정도다.

오픈세트외에 동헌은 어쩔수 없이 민속촌에서 촬영해야 하고, 사또 행차 등은 남원 일대에서 찍을 것이다.

세트촬영 못지 않게 '춘향뎐' 의 볼거리는 의상이다.

주인공들의 의상은 한복연구가 허영씨를 중심으로 역시 MBC미술센터가 가담했다.

주연배우들의 의상만도 50여벌이 넘는다.

춘향의 의상은 외출복과 평상복.소복 등으로 나뉘고, 몽룡은 도령복 (괘자와 복건).예복 (앵삼과 어사와).어사변복 (삼베도포) 등을 입게 된다.

변학도는 융복 (청현색 철릭과 철릭모) 이 주의상이 된다.

이들 주인공 외에 나는 당시 농사일하는 평민들의 의상도 재현할 참이다.

반소매와 반바지 차림으로 일하는 일꾼들도 등장한다.

이밖에 씨름판과 풍물패.그네타기 등의 민속놀이와 과거장 풍경, 사또 도임 행렬, 생일잔치날 풍경, 어사출도 장면 등이 진양조에서 휘몰이까지 이어지는 판소리의 리듬에 실려 진솔하게 펼쳐질 것이다.

이런 수고로움을 거쳐야만 나는 '춘향뎐' 이 민족의 정서를 담는 훌륭한 그릇으로 독창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믿는다.

각각 춘향과 이도령 역의 이효정과 조승우는 내 손에 다듬어져 배우티를 낼 것이고 김성녀 (월매) 와 유인촌 (변학도) 이 예의 관록있는 연기력으로 뒤를 받친다면 더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내 몫은 그저 열심히 찍는 것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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