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글로벌케어 코소보난민 의료봉사 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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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쿠커스 시청앞 호수변에 개설된 '글로벌케어 의료봉사단' 진료소를 찾은 코소보 난민들은 한국인 의료진의 친절하고도 섬세한 치료 손길에 거듭 고마움을 표시했다.

의료진도 고향을 잃고 일부는 가족과 생이별한 채, 그것도 모자라 병마에까지 시달리는 난민들의 딱한 모습에 가슴 아파했다.

진료소 첫 환자인 메헤레메 (70) 할머니. 코소보 남동쪽 부다코바를 떠나 이틀전 이곳 난민캠프에 들어온 그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들것에 실려와 다리 관절염과 발목 골절상 치료를 받았다.

그는 자신의 다리를 치료하는 광경을 멍하니 내려보다가 옆에 있던 기자와 시선이 마주치자 "우리 애들 좀 찾아주세요" 하고는 눈물을 주루루 흘렸다.

가족과 함께 피난길에 올랐다가 다리가 불편한 탓으로 앞서가던 트랙터를 얻어타고 먼저 왔는데 직후 국경이 봉쇄되는 바람에 생이별을 하게 된 것이다.

코소보에서 남편이 세르비아군의 총에 사살되는 것을 직접 목격한 후 정신적 충격으로 극심한 감정기복과 우울증을 겪고 있던 메드리다 이스마일 리라 (32.여) 는 진료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던 중 실신, 응급처방부터 받아야 했다.

피난길 추위 때문에 걸린 감기를 치료하지 못해 목이 퉁퉁 붓고 위장질환 등 합병증까지 겹친 두살난 페니 후치도 파란 눈동자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 엄마 품에 안겨 진료소를 찾았다.

의사와 간호사.약사 등 9명의 의료진으로 구성된 글로벌케어 의료봉사단은 지난 11일 밤 현지에 도착, 시청 부근에 정식진료소를 열어 15일부터 본격적인 진료활동을 펴고 있다.

일부 난민들은 진료소 앞에 달려 있는 플래카드에 '중앙일보.글로벌케어 코소보 난민 의료봉사단' 이라고 적혀 있는 한글이 신기한 듯 "무슨 뜻이냐" 고 묻고는 "신문사에서 이런 일도 하느냐" 고 감탄하기도 했다.

정상 가득 하얗게 눈이 덮인 고도 2천5백m의 잘리차봉 (峰) 아래 아름다운 호수를 끼고 있는 쿠커스는 스위스의 여느 휴양도시 못지 않은 자연풍광을 지녔다.

그러나 호수 주위로 너저분하게 들어선 국방색과 흰색의 수많은 난민텐트와 한결같이 땟국과 먼지에 절은 난민들이 배회하는 모습은 이같은 자연적 아름다움을 더욱 처연하게 만들고 있다.

난민수 10만명. 이 가운데 3만명이 이탈리아.그리스.아랍에미리트 등 7개 난민캠프와 약 2천5백개의 텐트에 수용돼 있다.

나머지 7만명은 난민캠프 밖 공터에 노숙하거나 일반 가정집에서 민박하고 있다. 민박의 경우 3~4평짜리 방 한칸 20~30명이 함께 생활한다. 앉아서 자야 하는 경우도 흔하다.

화장실과 수도시설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아 위생상태가 열악하며, 악취와 먼지로 인한 고생도 막심하다.

게다가 일교차가 최고 20도가 넘을 정도로 극심하다. 이 때문에 감기와 기관지염을 호소하는 환자가 계속 늘고 있다. 이곳에서는 현재 '쿠커스 코프' 로 불리는 기침병이 번지고 있다. 피부질환과 고혈압.위염.안질환 환자도 적지 않다.

글로벌케어 박준범 (朴埈範.35) 단장은 "많은 준비를 해왔지만 아무래도 인력 및 의약품이 부족할 것 같다" 며 "국민들의 많은 지원을 부탁한다" 고 말했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 (UNHCR) 의 레이 윌킨슨 대변인은 최근 "이 지역은 코소보 국경에서 불과 25㎞ 거리여서 안전에 많은 위험이 있다.

얼마 전에도 세르비아군이 인근 알바니아 초소에 포격을 가하는 등 국경지역에서의 교전이 계속되고 있다" 고 말했다.

쿠커스 = 최준호 기자

◇ 코소보 난민돕기 성금계좌 = 국민은행 815 - 01 - 0029 - 814, 한빛은행 131 - 05 - 008845 (예금주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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