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박연차 진술·비서 다이어리 신빙성 인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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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재판부가 박 전 회장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일각에선 “‘박연차 게이트’ 수사가 물증은 없고 지나치게 박 전 회장의 진술에만 의존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실제로 ‘박연차 검사’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박 전 회장이 검찰 수사를 이끌어 간 측면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날 판결로 박 전 회장의 주장은 모두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박 전 회장이 직접 돈을 전달했다고 지목한 이상철(전 월간조선 대표) 서울시 정무부시장에 대해 유죄가 인정된 것이 단적인 예다. 이 부시장은 다른 피고인들과 달리 돈을 받은 사실 자체를 완강히 부인해 왔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은 월간조선 2007년 2월호에 해명성 인터뷰가 실린 뒤 신라호텔에서 이 부시장과 함께 식사를 하고 일어나면서 상의 안주머니에 돈을 넣어줬다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며 “이 부시장에게 돈을 줬다고 진술할 경우 자신도 배임증재 혐의로 기소돼 실형이 예상되는데 허위 진술을 해 얻는 이득이 없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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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로 부산고검 검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김 검사는 박 전 회장에게서 돈을 받았다고 진술한 것은 검찰의 압박에 따른 것이고 대가성도 없었다고 주장해 왔다.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이 김 검사에게 돈을 준 당시의 상황을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며 “박 전 회장 비서의 다이어리, 골프장 출입내용 등에 의해 그 같은 진술은 보강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또 박 전 회장과 정대근 전 농협 회장에게 검찰 구형량에 근접하는 중형을 선고해 부정부패 근절 의지를 분명히 했다. 검찰은 박 전 회장에게 징역 4년을, 정 전 회장에게 징역 12년을 각각 구형했었다. 통상 법원은 뇌물수수자는 엄히 처벌하고 뇌물공여자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하게 처벌해 왔다.

그러나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은 정 전 회장에게 태광실업의 휴켐스 인수를 부탁하면서 거액의 뇌물을 적극적으로 전달했고, 청와대 고위공직자나 검사 등에게도 뇌물을 제공해 공직사회의 기강을 흔들었다”고 실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정 전 회장에게 50억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에게 23억여원을 주고 세종증권을 농협에 매각한 김형진 세종캐피탈 회장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회장은 혐의에 비해 이례적으로 불구속 수사를 받아 검찰 수사에 협조한 대가라는 설이 나돌았다. 이번 판결로 부하인 홍기옥 세종캐피탈 사장은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자신은 구속되는 처지가 됐다.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인 이광재 민주당 의원에 대한 선고는 23일 내려진다. 검찰은 이 의원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다. 이택순 전 경찰청장은 18일, 김정권 한나라당 의원은 25일에 각각 선고 공판이 열린다. 박진 한나라당 의원, 서갑원 민주당 의원,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의 재판도 진행 중이다.

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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