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 '로댕'이 숨쉰다-'로댕갤러리'개관기념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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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로댕이 온다. 프랑스 현대 조각의 아버지 오귀스트 로댕 (1840~1917) 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지옥의 문' 과 '칼레의 시민' 진품이 14일 개관하는 서울 태평로 로댕 갤러리 (02 - 2259 - 7781)에 영구 전시된다.

로댕갤러리는 삼성문화재단이 파리 로댕미술관을 비롯해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런던 빅토리아 앨버트 미술관 등에 이어 세계에서 8번째로 마련한 로댕 전문 컬렉션. 이를 기념해 로댕 갤러리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진품을 비롯한 83점의 다른 작품을 모아 9월 12일까지 '로댕 조각잔치' 를 연다.

'지옥의 문' 은 파리.도쿄.시즈오카.취리히.스탠퍼드.필라델피아에 이어 7번째로 소장하는 진품. 로댕 생전에는 청동 주조로 결실을 보지 못했다.

1880년 당시 새로 지을 파리 장식미술관의 입구로 의뢰를 받았으나 장식미술관이 자리를 이동하는 등 당초 계획이 변경되는 바람에 무산됐던 것. 로댕은 단테의 '신곡 (神曲)' 지옥편에서 영감을 얻은 이 작품에 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하다가 1900년 마침내 석고 모형을 완성해 일반에 공개했다.

첫 주조가 이뤄진 것은 1929년. 프랑스 정부는 법으로 조각작품의 에디션을 최대 12개까지 허용하고 있는데, 이번 서울에 오는 '지옥의 문' 은 97년 12월 프랑스 생 레미 쿠베르탱 주조소에서 재현한 것을 삼성문화재단이 세계 각지의 미술관과 치열한 경합을 벌인 끝에 구입했다.

함께 들여온 '칼레의 시민' 은 12번째 에디션으로 파리, 뉴욕, 도쿄, 코펜하겐 등지에 전시되고 있다.

이번 개관 기념전 제목을 '사랑과 열정의 서사시 - 로댕과 지옥의 문' 으로 정한 것은 '지옥의 문' 구입 의의를 살리면서 로댕의 작가 정신을 주요 테마로 정했기 때문.

인간 존재 자체에서 솟아나는 격렬한 욕망과 격정을 2백개가 넘는 인간 군상의 몸부림과 고뇌어린 표정으로 형상화한 이 걸작을 보고, 로댕을 흠모하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그는 자기 손보다 클까말까 한 수백 점의 인물상에 인생의 모든 정념, 온갖 쾌락의 절정, 갖가지 무거운 악의 짐을 담아냈다.

고통의 뿌리로부터 악의 즙이 솟아오르는 인간의 군상이 거기 있었다" 고 격찬하기도 했다.

로댕갤러리는 '에덴 동산과 육욕' '지옥과 저주' 라는 각각의 제목으로 2개의 전시실을 꾸민다. 이 전시를 공동기획한 파리 로댕 미술관이 내놓은 오리지날 석고작품 15점과 청동 15점, 대리석 4점 등과 호암미술관 소장품 10점 등이 소개된다.

특히 드로잉 25점이 함께 해 색다른 맛을 더한다. 한편 '생각하는 사람' 은 '입맞춤' '세 망령' 등 유명한 다른 작품들과 함께 '지옥의 문' 의 일부로 들어가 있어 이들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미국의 유명 건축가 그룹 KPF가 설계한 로댕 갤러리는 내외부가 유리로 된 '글래스 파빌리온' 형태로 건축돼 자연스런 채광이 마치 옥외에 조각작품을 배치한 듯한 느낌을 주도록 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개관전 후에는 로댕 영구전시와 함께 다른 작가도 초대한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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