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성마비 친구와 한몸 4년…대진초등 천사표 어린이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서울강남구일원동 대진초등학교 6학년 김기태 (金己泰.12) 군은 공부시간마다 공책 필기를 두번 한다.

처음에는 가지런한 글씨로 친구 동준 (가명.12) 의 공책에, 두번째는 서둘러 자신의 공책에 적는다.

기태가 동준이의 필기를 맡아온지는 4년째. 뇌성마비를 앓아 몸을 가누지 못하고 말을 잘 하지 못하는 동준이의 뒷자리에 앉은 3학년때부터 시작된 일이다.

기태는 좀처럼 아무도 말을 건네지 않는 동준이의 친구가 되기 위해 학기 시작 두달만에 선생님을 졸라 동준이의 옆자리로 옮겼다.

그 뒤 기태는 동준이의 손과 발이 됐다.

어머니 등에 업혀 계단을 오르는 동준이의 가방을 들고 교실로 들어와 수업이 시작되면 책을 펴준다.

쉬는 시간에는 어깨를 걸고 화장실로 이끌고, 다른 층의 실습시간에는 업고 함께 간다.

점심시간에는 식판에 밥을 날라주고 하교길에는 동준이 어머니와 번갈아 휠체어를 민다.

기태의 역할이 가장 빛나는 때는 의사소통이 어려운 동준이의 통역사를 맡는 순간. 6학년에 처음 올라와 급우들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도 기태는 온몸에 힘을 기울이며 동준이가 한 말을 친구들에게 옮겨주었다.

동준이를 괴롭히는 다른 친구를 혼내주고 설득하는 것도 기태 몫. 이 때문에 학교측은 기태와 동준이를 4년째 한반으로 배정되도록 배려했다.

담임 김민정 (金旻貞) 선생님은 "처음에는 동준이 흉내를 내며 놀리던 친구들도 기태의 행동을 보고 곧 함께 돕겠다고 나서기도 한다" 고 말했다.

아들의 가장 친한 친구를 지난해에야 알게 된 어머니 김혜경 (金惠慶.40) 씨는 "항상 어리광만 부리는 녀석이 그렇게 깊은 속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몰랐다" 고 대견해 했다.

기태의 꿈은 경찰관.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나쁜 사람을 혼내주고 싶다" 는게 이유다.

재활치료 덕분에 글씨도 조금씩 쓸 수 있게 된 동준이의 꿈은 "기태와 함께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것" 이다.

5일 서울시어린이상 봉사부문 대상을 받는 기태는 "중학교 갈 때 동준이와 헤어질까봐 걱정" 이라고 말했다.

이가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