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동시와 함께 90년 새싹회 윤석중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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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어린이를 어린이답게 하는 것은 동심 (童心) 이다.

하지만 각박한 시대는 어른들도 정신 못차리게 몰아치고, 아이들에게도 때이른 약삭빠름을 요구하고 있다.

해맑은 동심이 이제 현실이 아니라 추억처럼 못내 그리운 가정의 달, 어린이날을 맞아 평생을 동시와 함께 한 만년 어린이 윤석중 (尹石重.88.새싹회 회장) 옹을 만났다.

90년 가까운 세월은 얼굴에만 오고 마음에는 비껴갔는가.

서울역 앞 대우재단빌딩 내 새싹회 사무실에서 빛바랜 30년대의 잡지 '어린이' 와 사진첩을 펼쳐 마해송.방정환.이원수 등 당시의 필자들을 짚어나가면서 이야기를 시작한 그의 표정은 5월 햇살만큼이나 맑았다.

[만난사람= 문화부 이경철 차장]

- 7~8년전 찾아뵌 적이 있는데 여전하시군요. 매일 오전 8시20분이면 사무실에 출근하시는 걸로 압니다. 어찌 이토록 건강하십니까.

"운동 덕분입니다. 어린이 운동이오 (웃음) .한 사십년 전에 미군 번역 일을 도운 적이 있어요. 그 바람에 서양담배를 공짜로 얻어피웠었죠. 아이들이 다섯이었고 막내는 내가 데리고 자는데, 공짜 담배를 피운다고 나는 좋아했지만 아이는 괴로워 잠을 못잡디다. 그래서 끊었지요. 그 아이를 위해 끊은 게 결국 나를 위해 끊은 게 됐죠. 남을 위해, 특히 어린이를 위한 운동을 하며 사니 뭐 앓거나 늙을 틈이 없는 것이지요. "

- 서울역 앞을 지나다 실직자 부자를 봤어요. 꾀죄죄하고 풀죽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뭐가 그리 즐거운지 이곳저곳을 바라보는 죄없는 꼬마의 눈에서 '그래 이게 어린이구나' 를 모처럼 보았지요. 어린이는 어린이다워야 한다고 하는데, 어린이다움을 참 보기 힘든 세상이 됐습니다.

"사람은 정직해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가르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한 아버지가 빚쟁이가 집 앞에 찾아오자, 아버지 안 계신다고 그러라고 아들에게 시킵니다. 빚쟁이가 어디가셨냐고 물으니까, 아이는 집안에 대고 '아버지, 어디갔다고 그럴까요' 하고 묻더란 얘깁니다. 어른들의 위선 속에서 자라면서 어린이가 어린이다워지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지요. 우리는 경제적으로도 어려웠지만 정치적으로도 나라 잃은 백성이었으니 거짓말 안하기 힘든 시대를 살아왔습니다. 이제 어른들이 거짓을 벗어던진다면 어린이는 어린이다워질 것입니다. 파란 마음 멍들이지말고 그대로 놔두십시오. "

- 어린이다움을 어떻게 키워줘야 할까요.

"예전에는 어린이란 말도 없고 애 놈, 애새끼, 이렇게 불렀어요. 그랬던 것을 일본에서 어린이날을 보고 온 방정환 선생 등 도쿄 (東京) 유학생 다섯 사람이 1922년에 처음 어린이날을 만들고, '어린이' 란 존댓말을 쓰기 시작했지요. 그 전에는 최남선 선생이 '소년 남녀 여러분' 혹은 '소남 소녀 여러분' 이란 말을 쓴 적이 있고요. 아이들을 한 사람의 인격으로 대접하는 것, 이것이 예나 지금이나 어린이날의 기본 정신이고, 어린이다움을 키워내는 바탕이라고 봅니다. "

- 동요쓰기를 시작하신 계기는 뭡니까.

"우리 어렸을 때는 동요란 말도 없고, 창가라고 했어요. 가장 많이 부르던게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와 '새야 새야 파랑새야' 였는데, '달아 달아' 란 게 몇 백 년 전 남의 나라 어른이 술먹고 노래 불렀다는 내용 아닙니까. 파랑새는 실은 녹두장군 전봉준을 뜻하는데, 그렇게 불렀다간 요새로 치면 국가보안법에 걸리니까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고요. 한 마디로 아이들이 부를만한 노래가 없었던 겁니다. 저는 열한살에 뒤늦게 소학교에 입학했는데, '하루' 라는 동요를 가르쳐주더군요. 우리말로 하루, 이틀이 아니고 일본말로 '봄' 이란 뜻입디다. 어린 마음에도 봄조차 한국 봄을 쫓아버리는구나 싶어 우리말로 '봄' 이란 노래를 지어 '신소년' 에 투고 한 게 실렸지요. 그렇게 시작한 것이 올해로 77년 동안 동요를 썼습니다. "

- 그렇게 애써 쓰신 동요들인데 이젠 어린이들도 동요를 잘 부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일 아쉬운 것은 우리 민요 중에 어린아이들이 부를 만한 것이 없다는 겁니다. 한때는 민요곡조 한 30편을 골라 어린이들이 부르기 민망하지 않은 가사를 붙여볼 구상도 했어요. 그 때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제 마음을 대신 표현해줄 노래가 없이 자랐던 거죠. 그런데 지금도 상황은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어른들이 술집에서, 청춘남녀가 즐기면서 부르는 노래가 전부인거죠. "

- 일제시대 때 오히려 동요운동이 활발했던 것처럼 보이는데요.

"홍난파 선생이 일본 유학에서 돌아와 유치원 교사 양성하는 보육원 선생이 되면서 동요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 때 내 동시를 싣곤 했던 신문사를 통해 연락이 왔어요. 제가 양정학교 다닐 때인데, 갔더니 신문값 받으러 온 소년인 줄 아시더라고요 (웃음) .홍선생이 한두곡으로는 안되겠다면서 '조선동요백곡집' 이란 걸 내겠다고 공모를 했지요. '낮에 나온 반달' (윤극영작곡) '퐁당퐁당' '봄편지' '짝짜꿍' (정순철 작곡) , 이런 게 다 그 때 나왔어요. "

- 동요 운동, 특히 가족들이 즐겨 부르는 동요 운동이 시급하다고 느껴집니다.

"그나마 노래방을 통해 불리는 모양이에요. 예전 같으면 방송국 어린이 시간에도 어린이 노래가 나왔는데, 그러면 스폰서가 붙지 않는다고 요새는 다 없어진 것 같습니다. 정작 즐겁게 노래 부르는 걸 가르쳐야 할 학교에서는 시험문제 풀이나 하고요. 아이들이 자기 노래없이 자라는 것 같습니다. "

- 왜 동요가 때를 못만나고 있다고 보십니까.

"새로 나온 동요책 하나를 보니까 곡조가 아이들이 부르기 어려운 것도 많더라고요. 말나온 김에 노랫말 얘기도 해볼까요. 접때 친구 구상 시인이 왔는데, 이런 농을 주고받았어요. '애국가' 라니, 난 아이들 국가라는 줄 알았다, 그럼 어른 국가는 따로 있냐, 하고요. '나라 사랑 노래' 이렇게 하면 안됩니까. 한 달에 한번씩 노래방에서 작사자라고 인세주는 걸 보면 동요 쪽에서는 내가 제일 많아요.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것도 40여편으로 내가 제일 많고요. 새로운 동요 쓰는 사람, 동시 쓰는 사람들이 나와야지요. 당장 하루아침에 번지지는 않더라도 작품만 좋은 게 있다면 살아날 거라고 봅니다.

아이들이 계속 태어나는 한 동요는 없어지지 않을 겁니다. "

- 요즘도 동시를 쓰십니까.

"그럼요. 십년 전에 전집이 나온 후로 쓴 아흔 편을 모아 조만간 '아흔살 어린이 신작 동요집' 이 나올 겁니다. 억울하게도 아흔살이 돼버렸는데 (웃음) , 나보다 오래 살 수 있는 작품을 한편이라도 지어야겠다는 마음입니다. "

- 자녀.손자분들은 어떻게 지냅니까.

"3남2녀예요. 거기서 손자가 다섯, 손녀가 아홉이고요. 다 모이면 아내까지 열아홉 식구입니다. 큰 손자는 미국에서 자라 한국말을 통 못했는데 스무살이 넘더니, 할아버지 책이 보고싶다며 한국말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

- 평생 쓰신 1천여편의 동시 가운데 한 편을 꼽으라면.

"제일 어려운 질문입니다. 잘 알려진 시도 곡붙이는 분들이 잘 만들어 널린 퍼진 것이니까요. 앞으로 가장 좋은 작품을 쓰고 싶어요. 왜 이 나이에 내가 욕심부린 것인가요. "

<약 력>

▶1911년 서울 중구 수표동 출생

▶1924년 '신소년' 에 동시 '봄' 으로 등단

▶1933년 소파 방정환이 창간한 잡지 '어린이' 주간 이후 '소년중앙' '소년' '유년' '소학생' 등 주간 역임

▶1942년 일본 조치 (上智) 대 신문과 졸업

▶1956년 새싹회 창설 이후 소파상.새싹문학상 등 제정, 어린이 문학운동 펼침

▶1961년 3.1문화상 수상

▶1973년 외솔상 수상

▶1974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고문

▶1978년 막사이사이상 수상

▶1988년 '새싹의 벗 윤석중 전집' 간행

▶현 예술원 원로회원

▶어린이날 노래.졸업식 노래 등 동시 1천여편 창작

정리 =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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