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덩샤오핑 탄생 100돌…'작은 거인' 그림자 아직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5면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사'인 덩샤오핑(鄧小平)의 고향인 쓰촨(四川)성 광안(廣安). 22일 덩의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중국 거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시내 한 복판으로 들어서면 덩의 동상이 나온다. 앉은 모습의 이 동상은 높이가 10m다. 밤에도 환한 조명으로 빛난다. 허상보다 실용을 중시해 "동상 같은 것은 세우지 말라"던 그의 유언은 잊힌 듯하다. 그뿐인가. 그의 생가는 말끔히 단장돼 성역화됐다. 또 주변 촌락도 그의 생가 모습을 따라 다시 지어졌다. 광둥(廣東)성 선전(深)과 쓰촨성 청두(成都), 베이징(北京)의 중화세기단(中華世紀壇)엔 그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탑이 잇따라 들어섰다. 모두 덩의 생전 바람과는 다르다.

덩이 사망한 지 7년. 덩은 자신의 뜻보다는 오히려 그의 유산을 아전인수식으로 활용해보려는 사람들에 의해 굴절되는 모습이다.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100종 가까운 책이 쏟아졌다. 이 중 잘 팔리는 것은 1978년 그가 시동을 건 개혁.개방의 비전을 정리한 이론서가 아니다. 현대 중국인들은 덩의 성공 신화를 다룬 전기에만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덩의 유산을 누구보다 절박하게 활용하는 사람들은 중국의 지도부다.

◇ 권력은 이양돼야= 요즘 CC-TV를 비롯한 중국 TV들은 연일 '샤오핑 니하오(샤오핑 안녕하세요)'등과 같은 기념 특집을 잇따라 내보낸다. 재미있는 것은 덩의 업적 가운데 덩이 미련없이 권력을 이양한 부분이 강조된다는 점이다. 덩은 89년 11월의 중국 공산당 제13기 전국대표대회 제5차 전체회의에서 그의 마지막 권력 보루인 당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를 장쩌민(江澤民)에게 물려주었다. 장이 그 해 6월 당 총서기에 오른 지 불과 5개월 만의 일이다. 바로 이 부분이 중국의 대중 매체에 의해 거듭 부각되고 있다.

2002년 당 총서기를 후진타오(胡錦濤)에게 넘기고 2년 가까이 군사위 주석을 양보하지 않고 있는 장으로선 보기 거북한 대목이다. 13일 광안에서 거행된 덩의 동상 제막식엔 후진타오가 참석했다. 그러나 당초 참석이 예상됐던 장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장의 불편한 심기가 그대로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 경제는 성장해야=지난달 상하이(上海) 당서기 천량위(陳良宇)가 정치국 회의에서 얼굴을 붉혔다. "경기 안정 정책은 중국 경제를 죽이는 길이다. 모든 책임을 총리가 질 수 있겠느냐." 천은 장의 측근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이날 천의 발언은 성장 우선보다는 분배에 더 관심을 갖는 후진타오-원자바오(溫家寶)총리 체제를 겨냥한 것이다. 먼저 파이를 키우자고 주장했던 덩의 '선부론(先富論)'에 위반되는 게 아니냐는 뜻이었다. 키우기도 전에 나누는 데 신경을 쓰는 바람에 중국 경제의 성장 엔진이 식는다는 반발이었다. 이에 원 총리도 "그렇다면 나 또한 총리직을 걸겠다"고 맞섰다. 극한 대립이었다. 결국 후진타오가 상하이를 방문해 천을 진정시키는 선에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경제에선 덩의 유산을 앞세운 장측이 승리한 것이다.

◇ 미완의 개혁개방=베이징의 택시 기사들은 한때 마오쩌둥(毛澤東) 사진을 부적처럼 달고 다녔다. 교통 사고를 당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이가 마오의 사진을 갖고 있었다는 말이 퍼졌기 때문이다. 한 베이징 시민은 "이러다간 마오처럼 덩 부적 또한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며 웃는다. 모두들 편리할 때마다 덩을 견강부회로 갖다 쓰는 게 많다는 것을 꼬집는 이야기다. 좋은 유산 챙기기에만 급급한 것이다.

따라서 '6.4 천안문 사태' 재평가 등을 비롯해 덩이 남긴 적절치 못한 유산의 정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사태에서 노정된 비밀주의와 유명 의료인 장옌융(蔣彦永)을 최근 연금한 것에서 보듯 중국의 개혁은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중국의 덩샤오핑식 개혁개방 실험은 아직도 미완성"이라는 말이 나온다.

베이징=유광종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