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자들 타미플루 복용 너무 늦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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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제주공항 입국장에서 관광객들이 신종 플루 예방을 위해 손을 소독하고 있다. [뉴시스]

국내 신종 플루(인플루엔자A/H1N1) 사망자는 지금까지 모두 7명(뇌사 추정 환자 제외)이다. 이 중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고령이거나 만성질환에 시달려온 고위험군 환자였다. 건강한 젊은 층의 사망률이 전체 사망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멕시코나 18세 이하 청소년 사망률이 10%에 육박하는 미국 등과 비교할 때 고위험군의 치사율이 유독 높은 편이다. 이외에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항바이러스제(타미플루) 투약이 늦었다는 점이다.

보건복지가족부 중앙인플루엔자대책본부 권준욱 과장은 14일 “국내 신종 플루 사망자 발생 양상은 65세 이상 고령층이 주로 사망하는 일반 계절독감과 비슷하다”며 “65세 이상 고령에다 만성질환이 있는 사람일수록 신속 진료와 항바이러스제(타미플루) 조기 투약이 (치료에) 관건”이라고 말했다.

◆사망자 연령대 외국과 달라=국내 신종 플루 사망자 7명 중 6명은 만성질환을 앓아왔고, 그중 5명은 65세 이상 고령이었다. 이처럼 국내에서는 신종 플루 사망자가 고위험군에 집중돼 있다. 보건당국은 ▶65세 이상 노인과 ▶만성질환자를 신종 플루에 취약한 고위험군으로 분류한다. 고위험군은 신종 플루뿐 아니라 다른 모든 바이러스나 세균의 침입에 대응 능력이 매우 떨어진다. 계절독감 사망자 90% 이상이 65세 이상 노인층인 것도 이런 이유다.

그러나 신종 플루는 일반적인 계절독감과 달리 젊은 층의 사망률이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8월 21일 현재 전 세계 신종 플루 사망자 중 고위험군이 아닌 사람이 20~50%에 달한다. 미국 질병통제센터(CDC)는 미국 내 사망자 500여 명 중 18세 미만 아동·청소년이 45명이라는 자료를 최근 발표했다. 또 프랑스 연구진이 학술지 ‘유로서베일런스’에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전 세계 신종 플루 사망자 중 20~49세가 51%였고, 60세 이상은 12%에 불과했다.

보건당국은 왜 한국 사망자들이 고령자에 집중되는지를 잘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외국에 비해 사망자가 그리 많지 않아 통계적으로 분석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적기 투약이 관건=첫 번째 사망자인 56세 남성은 사망자 중 유일하게 기존 질환이 전혀 없었다. 나이도 비교적 젊었다. 그러나 첫 증세가 나타난 8월 8일부터 4일 동안 보건소 등 의료기관 4곳을 전전한 끝에 12일 처음으로 타미플루를 투여받았다. 타미플루는 증세가 나타난 지 48시간 이내 투약이 원칙이다. 결국 이 환자는 15일 폐렴과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다른 사망자들도 비슷하다. 병원에 온 날 타미플루를 처방받은 경우보다 병원 2, 3곳을 거친 뒤에야 투약받은 경우가 더 많다. 미국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8월 23일 응급실에 입원한 73세 여성 환자만 유일하게 입원과 동시에 타미플루를 복용했고, 다른 사망자들은 처음 병원을 찾은 지 2~8일 뒤에야 타미플루를 투약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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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는 “고위험군 환자에게 항바이러스제를 빨리 투여하지 않는 게 문제”라며 “고령의 만성질환자 경우 신종 플루에 감염돼도 발열이나 다른 호흡기 증상 같은 전형적인 신종 플루 증세가 안 나타나는 경우가 많으므로 의료진들이 너무 고지식하게 투약지침에만 얽매이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치료 거점병원은 지정돼 있지만 중증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를 구분하는 중환자 전달체계를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질병관리본부 전병율 전염병대응센터장은 “의료진들은 쓰던 약이 아니면 잘 안 쓰는 경향이 있다”며 “의료진에 대한 홍보를 지속적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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