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CIH 당해보니 Y2K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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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고 했던가. CIH 바이러스 소동을 보면서 2백50여일 앞으로 다가온 Y2K (컴퓨터 2000년도 인식오류 문제)에 대한 걱정을 떨칠 수가 없다.

컴퓨터 사용자들에게 지난 26일은 '최악의 날' 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대만인 전문가가 전세계에 뿌린 CIH 바이러스 (일명 체르노빌 바이러스) 는 수십만대로 추정되는 국내 PC를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개인은 물론 내로라 하는 간판급 정보기술 전문업체와 주무부처인 정보통신부까지도 피해를 보았고, 기간사업체인 한국통신이나 고도의 정보관리가 필요한 국방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쉬쉬' 하고 있지만 일부의 피해는 상당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충분히 예견된 것이었다는 점이다. CIH 바이러스가 4월 26일에만 발병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었다.

또 이미 '공짜' 백신이 만들어져 오래전부터 인터넷.PC통신과 언론을 통해 홍보와 경고가 있어 왔다.

정부의 '뒷북' 도 가관이었다. 이날 0시부터 PC통신 게시판을 통해 피해사례가 잇따라 보고되고 있었지만 정부는 오후가 돼서야 뒤늦게 진상파악에 나서는 바람에 초기 대응기회를 놓쳐버렸다.

전문인력.대응체계 등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던 정보화 시대에 대한 준비가 무방비 상태라는 게 이번 일을 계기로 입증됐다.

한 정부 실무자는 "종전에도 바이러스에 대한 경고가 수차 있었지만 대부분 별탈없이 지나가 방심했다" 고 털어놓았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정부.기업들은 70%가 완료됐느니, 80%니 숫자를 들먹이며 안심하라고 강조하지만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않은 분위기다. 충분히 예고된 바이러스에도 이렇게 쩔쩔 맬 정도라면 Y2K에 대한 결론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번 일은 우리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전화위복 (轉禍爲福) 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는 범정부 차원의 협조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이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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