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알고도 맞은 컴퓨터 재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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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번 CIH 바이러스 대란 (大亂) 소식을 접하면서 필자는 착잡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CIH 바이러스의 피해는 이미 충분히 예견돼 왔으며 언론에서도 4월초부터 지속적으로 경고를 해왔던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 4월 26일이 돼서는 사상 최대의 바이러스 피해라는 큰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CIH 바이러스 피해 소식을 접하면서 필자는 성수대교 붕괴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됐다.

성수대교 사고는 우리 모두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만 전력을 다하고 기초를 다져나가지 않은데서 비롯된 사고였다.

빨리 만든 다음에 눈으로 보기에 아무 이상이 없으면 다시 다른 것을 만드는데 전력을 기울이는 우리의 마음가짐이 그런 큰 사고를 불러왔던 것이다.

안전을 위해서는 공사기간엔 물론 공사가 끝난 후에도 지속적으로 안전에 필요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는 상황에서 성수대교 붕괴는 필연적인 결과라 할 수 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거의 모든 분야에서 안전비용은 필수적인 비용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안전에 필요한 노력이나 비용은 처음에는 필요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함으로써 적은 비용으로 큰 손실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결국 안전에 드는 노력이나 비용은 각각의 회사 또는 더 나아가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자동차 보험을 드는 이유와도 일맥 상통한다.

사고가 나지 않을 때는 자동차 보험을 드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자동차 사고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며 자기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러나 일단 사고가 나면 그 피해 액수나 형사적인 책임이 너무 커 개인적으로 감당하기에는 힘든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자동차 보험은 자동차를 몰면서 누릴 수 있는 많은 혜택을 받기 위해 필수적으로 지불해야 하는 안전비용이라고 볼 수 있다.

CIH 바이러스 사고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야 한다.

컴퓨터를 사용해 업무 생산성을 높이고 네트워크 및 인터넷과 연결해 편리하게 사용함에 따라 컴퓨터 바이러스의 위험도 비례적으로 커지고 있다.

컴퓨터들이 네트워크로 묶여지지 않았을 때는 컴퓨터 바이러스의 피해도 각각의 개인용 컴퓨터에 국한됐다.

감염되는 경로도 플로피 디스크를 통해 주로 이뤄졌기 때문에 비교적 적은 숫자의 컴퓨터가 감염됐고 전파되는 속도도 비교적 느렸다.

그러나 컴퓨터들이 네트워크로 묶이고 여기에 인터넷이 연결됨에 따라 한 컴퓨터에서 발생한 컴퓨터 바이러스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게 됐다.

감염 속도도 엄청나게 빨라지고 피해도 대형화하는 추세가 됐다.

따라서 네트워크를 통해 컴퓨터를 편리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백신 소프트웨어의 사용을 필수적인 안전비용으로 생각해야만 하는 때가 온 것이다.

미리 예방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이번 CIH 바이러스 피해는 인재 (人災)에 속한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이번 사태는 컴퓨터 사용자들 사이에서 만연해 있는 사고 불감증을 여실히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피해가 난 것은 난 것이고 문제는 이제부터다.

CIH 바이러스의 변형 바이러스들이 계속 발견됨에 따라 4월 26일만이 아닌 매월 26일에 이러한 사고가 속출할 가능성도 있으며, 또 다른 종류의 악성 바이러스가 계속 나타날 가능성도 매우 큰 상황이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기관별로 대책을 세우고, 담당자를 정하고, 홍보 활동을 하고, 사용자 교육을 하고, 백신 프로그램을 구매하는 등의 구체적인 활동을 시작해야 한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기업.관공서 등 단체 사용자들은 백신 소프트웨어를 필수적인 업무용 소프트웨어의 하나로 간주하고 있다.

컴퓨터 바이러스의 종류가 많아지고 기법이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에 컴퓨터 바이러스마다 개별적인 대책을 세우기는 현실적으로 힘들기 때문이다.

컴퓨터 바이러스에 의한 피해 확률 및 피해 액수가 커짐에 따라 기업.관공서 등 단체 사용자 환경에서는 백신 프로그램의 도입과 정기적인 업데이트 정책의 확립을 필수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컴퓨터 바이러스는 이제 컴퓨터 사용자 개개인들만의 문제가 아닌, 전 사회적 문제가 됐다.

컴퓨터 바이러스는 우리가 정보화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과정에서 극복해야만 하는 하나의 걸림돌이다.

그러나 정부.기업.언론.사용자.백신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모두가 힘을 합쳐 노력한다면 우리의 능력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안철수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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