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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파 수장’ 아닌 ‘일국의 대통령’일 때 지지율 뛰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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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김정하·허진 기자

36.4%(7월 7일)→40.5%(8월 4일)→ 46.1%(9월 1일).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가 발표한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 추이다. 최근 두 달 새 10%포인트 가까이 올랐다. 윈지코리아의 조사(7월 25일 33.6%→9월 6일 42.2%)나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조사(7월 13일 31.9%→8월 25일 41.4%)도 마찬가지다. 특히 2007년 대선 당시의 핵심 지지층이 지지도 상승을 이끌고 있다. 지역별로는 수도권과 대구·경북이 상승세를 주도했다. 리서치앤리서치의 7월 조사에서 서울은 37.5%, 인천·경기 36.0%, 대구·경북 44.9%였으나 9월엔 서울 52.4%, 인천·경기 47.2%, 대구·경북 67.5%로 늘었다. 연령별로는 여론 형성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40대(7월 29.4%→9월 41.1%)에서, 직업별로는 자영업(7월 30.3%→9월 44.8%)에서 가장 큰 폭으로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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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오르나=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뛴 것은 6월 22일 “사회 전체가 건강해지려면 중도가 강화돼야 한다”며 중도실용·친서민 노선을 천명하면서다. 이 대통령은 이후 서울 이문동 떡볶이집을 비롯, 거의 매주 한 번꼴로 서민생활 현장을 방문했다. 이번 달만 해도 4일 포천 장애인시설, 10일 남대문시장, 11일 홍천 농촌마을 등을 방문했다. 야당은 “정치쇼”라며 냉소적으로 보지만 적어도 지지도 관리 측면에서 현 정부 초기의 ‘강부자’(강남 땅부자) 이미지를 희석하는 데 도움을 줬다는 데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서민형 정책 개발도 주효했다. 윤희웅 KSOI 정치사회조사팀장은 13일 “대학생 학자금 대출의 취업 후 상환제, 서민 무보증 소액신용대출, 보금자리주택 등의 정책이 주부와 자영업자들의 지지를 모으는 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결정, 북한 조문단 접견, 정운찬 총리 후보자 지명 등도 ‘통합’의 이미지를 제고시켜 지지율 상승으로 연결됐다는 평이다. 이념적으로 보수층(49.3%→56.9%), 진보층(22.1%→30.2%)보다 중도층(32.8%→45.2%)의 지지율 상승 폭이 더 큰 것도 이런 요인들 때문으로 보인다.

◆앞으로도 이럴까=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정치사회조사팀장은 “이 대통령의 전통적 지지층이 다시 뭉치고 있어 당분간 현 추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리얼미터 이택수 대표도 “원래 민주당이 추구해야 할 중도실용 노선을 이 대통령이 선점했다. 지금으로선 별다른 악재가 안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변수가 없는 건 아니다. 일단 이번 주 시작되는 인사청문회와 다음 달 국정감사에서 여권이 야당의 파상 공세를 어떻게 돌파할지가 중요하다. 더 큰 고비는 10월 재·보선이다. 만약 한나라당이 지난 4월 재·보선처럼 참패한다면 상승세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 이 대통령의 ‘중도실용’은 아직 슬로건 수준이기 때문에 실제 피부에 와닿는 정책 효과로 연결되지 못하면 ‘반짝 장세’로 끝날 것이라고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청와대도 신중한 자세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수석회의에서 지지율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이 대통령은 ‘지지율에 일희일비하지 마라. 신기루가 될 수 있다. 일관성 있게 정책을 펴고 인정받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고 전했다.



DJ는 남북정상회담, YS는 역사 바로세우기
역대 정권 지지율 반전 카드는

역대 대통령들은 취임 초 하늘을 찌를 듯한 인기를 누리다 예외 없이 임기 말에 지지율이 처참히 붕괴되는 패턴을 반복해왔다. 다만 임기 중간 중간에 한시적으로나마 반전의 계기를 만든 사례가 없지는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3월 탄핵 ▶2005년 초 실용주의 노선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 등 세 차례에 걸쳐 지지율 반전 국면을 만들었다. 특히 2005년 사례는 현 정부와 유사하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2005년 연두회견에서 ‘선진 한국과 동반 성장’이란 좌우 통합형 어젠다를 들고 나왔다. 또 정치 현안에서 한발 빼는 대신 자이툰부대 방문(2004년 12월), ‘대일본 강경 선언’(2005년 3월) 등으로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2005년 4·30 재보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참패하자 노 전 대통령의 상승세도 끝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집권 초 ‘옷 로비’ 사건으로 지지율에 직격탄을 맞았으나,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을 성공시켜 취임 당시의 지지율을 회복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임 후 개혁 드라이브를 구사하면서 인기를 누리다가 1994년 12월 쌀 시장 개방을 결정한 뒤 지지율에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러나 임기 중반인 95년 11월 ‘5·18 특별법 제정’이란 승부수를 던져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사법 처리하면서 지지율을 크게 끌어올렸다.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 여론조사비서관 출신인 이근형 윈지코리아 대표는 “대통령이 특정 정파의 수장이 아니라 국가 지도자의 면모를 보여줄 때 지지율이 상승하는 특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 대표는 “2005년 초 노 전 대통령도 통합적 행보로 전환하면서 지지율이 상승했지만 기조가 오래 가지 못했다”며 “이 대통령도 현 상승세를 이어가려면 일관되게 통합 기조를 유지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MB와 따로 가는 한나라당 지지율, 왜
“여당 존재감 부각 안됐고 박근혜 변수도 작용한 듯”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도는 상승세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지지도 격차는 오히려 줄었다. 리서치앤리서치가 4월 14일 실시한 조사(한나라당 39.1%, 민주당 13.3%)에선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지지도 격차가 세 배 가까이 됐다. 하지만 9월 1일 조사(한나라당 32.8%, 민주당 26.9%)에선 민주당이 한나라당을 턱밑까지 쫓아왔다. 민주당의 지지율이 크게 뛴 것은 5월 이후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 정국에서 전통적 지지층이 결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 대통령의 상승세에 별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MB(이 대통령)=한나라당’의 이미지가 확고하지 않다는 의미도 된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한나라당 관계자는 “그동안 국정 운영이 이 대통령 주도로 이뤄지면서 상대적으로 여당의 존재감이 부각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미디어법 등을 놓고 야당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한나라당이 청와대를 대신해 ‘정치 비용’을 치렀기 때문에 불가피한 결과라는 해석도 나온다. 일부에선 ‘박근혜 변수’를 지적하기도 한다. 이근형 윈지코리아 대표는 “한나라당에는 이 대통령의 강력한 대항마인 박근혜 전 대표가 있는데 이 같은 ‘이중 권력 구조’가 대통령과 여당 지지도를 따로 놀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민주당이 지지 기반의 외연을 넓힐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정치사회조사팀장은 “민주당은 기존의 패러다임을 총체적으로 바꿔야 한다”며 “그동안은 이 대통령의 실정으로 인한 반사이익에 안주해 왔으나 앞으론 대안을 제시하면서 생산적 대결 구도로 나가야만 새로운 지지층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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